<264>날개에 숨긴 칼 (2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강준호가 계속 공을 날려먹고 있는 이 18번 홀은 미국 내에서 제일 어려운 코올라우 골프코스 중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홀이었다. 파5홀이었는데 화이트 티 기준으로 티잉그라운드에서 200야드 이상을 날려야 겨우 계곡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강준호는 한술 더 떠서 10 여 미터나 뒤로 물러서있는 챔피언 티에서 티샷을 하고 있었다. 비록 뒤로 물러선 거리는 10 여 미터였지만 시야는 이루 말하기 어려울 만큼 좁게 보였다. 그나마 골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티샷한 공은 바람을 타고 두둥실 떠올랐다가 엉뚱한 곳으로 내동댕이쳐지기 십상이었다.
“딱!”
소리는 경쾌했지만 이번에도 강준호의 티샷은 계곡 아래 숲속으로 말려들어갔다. 숲이 아마존 밀림지대처럼 우거져 있었기 때문에 한번 숲속으로 날아 들어간 공은 아예 찾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공 과장! 공 하나만 더!”
“그만 하시지요. 벌써 이번 홀 티샷만 열다섯 번째예요.”
“잔소리 말고 공이나 줘봐요.”
“두개 남았는데… 이건 제가 쳐야죠.”
“내려가서 주워오면 되잖아요… 염병!”
공 과장은 더 이상 뻗댈 수가 없었다. 삶은 머리처럼 벌겋게 열 받은 강준호의 얼굴에서 이제는 무럭무럭 김이 솟아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신희영과 한승우도 잔뜩 열 받은 모습이었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고, 골프라운드 중에는 동료 중의 한 명이 열 받으면 본인은 기뻐야 할 터이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달랐다. 하긴 상대가 캐빈 코스트너라면 봐 줄 수도 있었겠지만…
“좋아요, 남자가 칼을 뽑았으니 끝장을 봅시다. 몇 타 만에 계곡을 넘기나 해보자고요. 공 과장! 미안하지만 계곡 밑으로 내려가서 공 좀 주워 와요.”
“아이고, 회장님. 제가 아무리 공 씨지만… 저토록 가파른 계곡에서 어떻게 공을 주워올 수 있나요?”
“그럼 18홀까지 와서 게임을 포기할래요?”
“아닙니다. 제 말씀은… 공이 아직 두 개나 남았으니 지금부터라도 강 프로께서 정신 차리고 잘 치시면 무사히 게임을…”
여기까지였다. 공 과장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얼핏 강준호의 얼굴을 돌아 본 순간 수증기처럼 씩씩대며 콧김을 내뿜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끗발 낮은 게 죄지… 그는 유격대원처럼 날렵하게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강유리와 백광돌은 두 홀이나 뒤쳐진 16번 홀에서 신선게임을 즐기는 중이었다. 생전 처음 골프장에 따라온 유한솜이 일찌감치 게임을 포기한 까닭이었다. 유한솜을 클럽하우스로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박 대리가 그녀를 수행했으므로, 코스에는 강유리와 백광돌만 호젓하게 남아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려나? 하늘이 꾸물꾸물한 게 바람도 으스스 하군.”
희망사항일까? 백광돌은 언뜻언뜻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지하며 눈을 찌푸렸다.
“매니저 님, 이런 식으로 골프장 순례를 한다고 제 실력이 향상될까요? 유민 회장에게 뭔가 적극적인 지원요청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글쎄 말이야. 유민그룹의 후계자인 유호성을 우리 팀에 끌어들여야지. 그렇지 않고는 유민이가 눈이나 깜짝하겠어? 어떤 수단을 써서든 그 녀석과 합류할 방법이 없을까?”
매니저 백광돌은 강유리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 속으로 코올라우 코스 위에 펼쳐진 잿빛 하늘과 구름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