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회> 날개에 숨긴 칼 8

‘W. 블레이크’는 여자의 나체를 신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디루소 드 모리나’는 사랑의 여신이야말로 수줍음을 타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벗자! 벗은 자 앞에서 입은 자는 교만이고 위선이라 했다. 동시에 수치라고도 했다. 이 역시 소설가 유주현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게 웬 떡이냐?’

유호성은 곧 본색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세상만사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이, 여자의 아름다운 나체도 보는 사람의 격에 따라 달리 보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나체 데생 시간에 그림 그릴 생각은 않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지겟작대기를 몰래 움켜쥐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놈이야말로 본색을 드러낸 것일 게다.

“어머나, 벌써….”

어느새 그의 지겟작대기가 분기탱천하기 시작했다. 미처 바지를 내리기도 전이었다. 앞으로 무려 2박3일이란 긴 시간이 남아있고, 주위엔 간섭할 사람마저도 없었건만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주책을 부리니 여자의 아름다운 나체를 감상하는 예술적인 안목은 그야말로 젬병이었다.

“이리 와, 우선 한 번 하자.”

“오빠, 천천히…일단 옷을 벗고 섬 둘레 길부터 걸어요. 맨발로 걷고, 알몸으로 자연을 호흡해 보자고요.”

옛날, 중국에서 비롯된 육병(肉屛)과 육대반(肉臺盤)의 고사를 아는가?

양귀비의 오빠인 양국충(楊國忠)은 겨울이 되면 병풍을 치는 대신 수십 명의 여인을 옷을 벗긴 채로 살이 맞닿도록 죽 둘러앉히고 그 속에서 체온을 느끼고, 분 냄새를 맡으며 지냈다고 한다. 이게 바로 육병이다.

또 남당사공이란 높은 벼슬을 하던 손성(孫晟)은 잔치를 벌일 때마다 밥상 대신에 옷 벗은 채로 죽 늘어선 여자들 몸에 음식을 놓고 그걸 골라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육대반이니 요즘 어디선가 유행한다는 알몸 스시의 원조인 셈이다.

유호성이 여자의 아름다운 나체를 보며 느끼는 정서란 고작해야 육병이나 육대반 수준이었다. 그나마 처음 그녀가 옷을 벗기 시작할 때 잠시나마 느꼈던 ‘나무꾼과 선녀’의 동화적 감정마저 없었다면…그야말로 떡을 할 놈이었다.

“이러고 섬 둘레를 걷자고?”

“아무러면 어때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새가 보고, 물고기가 보는데?”

“어머, 어머! 웃기지도 않거든요?”

“하늘이 보고, 땅이 보고….”

“입 다물어요. 그리고 어서 이 옷가지나 챙겨서 술통 속에 넣고 와요.”

잔소리는 그만 하라는 소리였다. 이런 경우를 보더라도 여자는 모두 예술적인 소양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로 두 팔을 벌리고 천천히 섬 둘레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세요, 발바닥으로부터 생기가 전해져 와요.”

걸음을 걸을 때마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어여쁘게 돋아난 원추형의 젖가슴은 하늘을 향해 피어난 목련처럼 젖꼭지를 돋우고 출렁였다. 이 얼마나 상큼한 모습인가!

“아이고, 발바닥이야. 좀 천천히 걷자고.”

하지만 억지로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유호성의 꼬락서니는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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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