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본격적인 겨울이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시기다. 언제나 바쁜 도시와는 달리 농한기인 농촌은 깊은 동면 속으로 빠져든다. 물론 이 시기는 강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치는 시련의 달이기도 하다. 절기를 보면 7일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이며, 21일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다.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해 어느덧 15번째 겨울을 맞았다.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29도(기상청 동네예보)까지 떨어진 적도 있고, 눈길 차량사고와 상하수도 동파 등도 피할 수 없었다. 전원생활에서 크고 작은 불편함과 어려움은 통과의례다.
이렇듯 전원의 겨울은 봄·여름·가을과는 달리 ‘시련의 계절’이다. 하지만 인내와 극복과정을 통해 오히려 진정한 쉼과 힐링, 더 나아가 자유함까지 얻을 수 있는 ‘감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주 충청남도 당진에 있는 한 대기업 계열사의 정년퇴직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귀농귀촌 강의를 했다. 오전 강의시간에 맞추기 위해 당일 새벽에 출발했는데 4시간 이상 도로에서 눈 폭탄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제는 훨씬 먼 전라남도 나주혁신도시 내 농식품공무원교육원에서 귀농귀촌 강의를 했다. 물론 이는 ‘전원 길라잡이’를 자임하는 필자가 스스로 택한 ‘고난(?)’이다. 그래서 더욱 보람찼고 무탈함에 대한 감사와 자유함까지 맛본 뜻깊은 시간이었다.
사실 전원의 겨울이야말로 가만히 귀 기울이면 다른 계절보다 오히려 자연의 소리, 하늘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 가만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있는 즐거움도 맛보고, 독서삼매경에도 빠져본다. 고라니, 너구리, 꿩과 참새 등 자연의 친구는 또 얼마나 많은가.
모든 게 정지된 듯 보이는 숲과 들에서도 생명의 움직임은 있다. 10월 중순께 과수밭 귀퉁이에 마늘을 심었다. 폭설과 영하 12도의 추위에도 벌써 한 뼘 이상 자라 강인한 생명력을 뽐낸다. 가을걷이한 밭에 뿌린 호밀은 마치 녹색 양탄자처럼 싱그럽다. 인고의 과정을 통해 새 삶을 묵묵히 일궈가는 뭇 생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생의 연단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는다.
2022년 이후 귀농귀촌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50·60대를 중심으로 한 도시인들의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은 여전하다. 특히 만 60세에 은퇴하는 이들이 맞이하는 ‘인생의 계절’은 전원의 사계절 중 겨울나기와 비슷한 것 같다.
100세 시대 운운하지만 건강수명은 80세에도 크게 못 미치니 60대부터는 ‘인생의 겨울’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도시를 떠나 인생 2막의 장으로 전원을 택했다면 겨울이란 연단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시보다 물질적으로 부족하고 육체적으로 고단해도 돈과 명예 등 세상의 가치를 내려놓고 늘 자연과 소통하는 자연인이 되면 자연이 주는 쉼과 힐링은 내 것이 된다. 더 나아가 자연너머 초자연(신)이 베푸는 삶과 영혼의 자유함까지 이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뭔가. (필자 또한 갈 길은 멀지만) 참 자연인은 곧 자유인이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