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뿐 아니라 정 · 관계 리더들 아우르는 ‘파워학맥’…인적 네트워크 넘어 싱크탱크로 한단계 진화

[특별취재팀] 지난해 10월 말 서울 대치동 BMW 매장에는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날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MBA),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MIT와 스탠퍼드 MBA 졸업생들이 처음으로 한 데 모여 통합 동문회를 연 날이다. 정 사장은 MIT를, 홍 사무총장은 케네디 스쿨을 나왔다. 불과 한해 전 하버드와 MIT, 스탠퍼드 대학의 MBA 졸업생으로만 구성됐던 통합 동문회는 이 날을 기점으로 케네디 스쿨 출신으로까지 확대됐다. 재계 뿐 아니라 정관계 인사와의 교류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케네디스쿨 출신으론 하버드대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박진 전 국회의원을 비롯해 반기문 UN사무총장,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있다.

해외 명문대학 동문회가 ‘파워 학맥’으로 주목받고 있다. 본격적인 ‘유학파’ 재계 3~4세가 책임 경영을 맡으면서, 이들이 주요 명문대 동문회장 자리에 속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 뿐 아니라 해외 명문대에 뿌리를 둔 정관계 오피니언 리더가 늘면서, 해외대 동문회가 인적 네트워크를 넘어선 ‘싱크탱크’로 한단계 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차세대 경영인이 속속 해외 명문대 동문회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주효한 변화다. 지난달 펜실베니아대 MBA 과정인 와튼스쿨 동문회장이던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이 학부까지 아우른 총동문회장이 됐다. 와튼스쿨 동문회장은 박찬구 웅진케미칼 대표가 맡고 있다. 지난해까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동문회장을 맡았던 보스턴대도 올 들어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이 회장직에 올랐다. 브라운대도 동문회장직을 하현준 한국외국어대 자연대학장에서 김준 경방어패럴 대표이사로 자리물림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3~4세 경영인이 이처럼 동문회장직을 맡은 이유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인지도 향상이 기업 경영 활동에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MBA계의 해병전우회’로 불리는 와튼스쿨은 6년여 전부터 모교 학생 30~40명을 초대해 국내 기업 탐방에 나서는 ‘코리아 트렉’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국가에서도 예비 리더나 다름 없는 해외 명문 모교 학생들은 초대함으로써 글로벌 학맥을 쌓는과 동시에 대외 홍보 기회를 얻는다는 설명이다. 올해도 지난달 정지택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등 젊은 동문들이 주축이 돼 와튼스쿨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 30여명을 초청해 한국 기업을 소개했다.

때문에 재계에선 해외 명문대학 동문회장을 맡은 기업의 관련 업무량만도 왠만한 부서를 맞먹는다고 전해진다. 관계나 학계보다 재계에서 동문회장직을 맡게 된 것도 이 같은 특성과 무관치 않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 유명 대학 동문회장을 맡은 기업에선 모교의 저명한 교수의 내한이나 학생 문화교류 등 관련 행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업무량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세계 정상급 대학 출신이란 자부심에 따라, 국내 동문회 뿐 아니라 대학 본부 동문회의 활동도 활발하다.

보스턴대는 지난 25일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애도를 한국 동문들에게 전달했다. 그렉 스톨러(Greg Stoller) 국제경영학 교수는 “한국의 보스턴 대학 동문들에게 끔찍한 비극에 대해 함께 슬퍼하고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하버드 대학은 일년에 두 차례씩 전 세계 하버드 동문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으면서 ‘글로벌 학맥’을 재 확인한다. 하버드 출신 국내 기업 인사가 해외 시장 조사 시 동문 도움을 받거나, 반대로 하버드 출신 해외 인사가 국내 방문시 도움을 받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해외 명문 대학 동문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은 재계 차세대 리더들의 ‘도련님 문화’와 밀접하다. 그들에게 유학시절이 각별하다. 국내에서 나온 학부보다도 해외에서 나온 대학원을 챙기는 것은, 그 때가 ‘어느 집 자식’이란 꼬리표를 떼어낸 유일한 학창시절이란 그리움도 있다.

펜실베니아대 총동문회장인 안용찬 부회장도 학부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그가 모임에 자주 나서는 것은 와튼스쿨 쪽이다. 총동문회장에 오르기 전에도 국내 와튼스쿨 입학 설명회에 직접 나서고, 함께 학교를 다녔던 80년대 학번 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와 더불어 김신배 SK부회장, 이상웅 세방그룹 부회장, 장하성 고려대 교수, 구본걸 LG패션 회장 등 40여명은 ‘와튼 80’s’모임에 속해있다.

재계 인맥 뿐 아니라 정계 인맥도 동문회의 입김을 좌우하는 한 잣대다. 박근혜 정부들어 가장 뜬 해외대학 동문회로는 단연 위스콘신대가 꼽힌다. 새누리당 원내 사령탑인 최경환 원내대표가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위스콘신 동문회에는 유승민, 강석훈, 안종범 등 친박 의원 4명을 비롯해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신년회 장소(GS 타워 아모리스홀)을 제공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도 동문이다. 본래 100여명 정도가 참석하는 위스콘신 동문회는 최근에는 그보다 배 이상 참석자가 늘었다고 전해진다.

국내 하버드대 동문인 ‘하버드 클럽(Harvard Club of Korea)’의 활동이 활발해진 기점도 정치권 움직임과 밀접하다. 하버드 클럽은 동문인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시기를 기점으로 모임이 잦아졌다. 그 이전 하버드대는 대학원과 최고경영자과정(AMP) 동문은 국내 1000여명 있으나, 이른바 ‘성골’ 출신인 학부 출신 동문 수가 100여명 수준으로 미비해 동문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

반면 동문회 활동에 소극적인 재계 인사도 눈에 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하버드대 박사 출신이지만, 동문 모임엔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부회장은 유학 시절에도 조용한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특별취재팀=홍승완·성연진·도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