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주변의 상습부실 사례들

하루 15만명 이용하는 고속철 차량 고장·탈선 등 잇따라 발생

“이왕 지은 것 좀 더 쓰자” 설계수명 끝난 원전들 재운영 승인 고리1호기·월성3호기 등 가동중단 사고

한강 노후교량·낡은 학교 건물도 또다른 대형사고 위험 요소

‘위험 사회(1986년 출간)’의 저자 울리히 백 교수는 근대 사회의 위험이 이전 사회보다 더 심각해진 이유를 ‘예측 불가능성’으로 꼽았다.

홍수, 산불 등 자연재해에 비해 고도로 복잡해진 근대 사회의 위험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 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위험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앞에서 울리히 백 교수의 오래된 사회학 이론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감독없는 수직 증축, 완화된 선령 제한, 항로 독점 운영, 관과 기업의 유착 등은 세월호 사고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던 위험임을 증명한다. 거꾸로 얘기하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 달성을 자랑으로 내세웠던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前) 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여전히 국내엔 도처에 위험 요소들이 즐비하다.

▶쓰고 또 쓰고=지난 2007년 설계 수명(30년) 만료로 운영이 종료될 예정이었던 고리원전 1호기는 여전히 가동중이다. 재운영 승인을 받아 10년간 더 운영되도록 조치됐기 때문이다. 재승인 이유는 ‘돈’ 때문이다. 대규모 시설이 수반돼야하는 원전이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더이상의 신규 원전 설립이 어렵게 되자 이왕 지은 것을 좀 더 쓰자는 설명이다. 고리 1호기는 정비를 받고 재가동됐지만, 불과 50일만에 원인모를 이유로 가동중단 사고도 일어났다. 지난 2012년 재승인을 받은 월성 3호기 역시 8개월만에 발전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13∼2027년(6차 전력수급계획) 사이 수명이 끝나는 원전은 2012년 11월 설계수명이 다 돼 멈춰선 월성원전 1호기를 비롯해 총 8기다. 울진 1호기의 수명은 2027년에, 고리 2호기는 2023년, 고리 3호기는 2024년, 고리 4호기와 영광 1호기는 2025년, 울진 2호기는 2028년에 각각 가동 유효기간이 끝난다. 이들 원전들이 ‘전력 수급 이상’ 등의 이유로 재승인이 날 경우 남한의 바닷가를 따라 둘러쳐진 원전들은 자칫 ‘원자폭탄 라인’이 될 수도 있다.

세월호 사고 역시 ‘쓰고 또 쓰는’ 관행이 부른 참사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국내에서 운항하는 2000t 이상 대형 여객선(17척) 가운데 11대가 세월호처럼 해외에서 수입한 중고 여객선인 것으로 나타났다. 11대의 평균 선령은 22년이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선령 제한을 30년(기존 20년)으로 완화했고, 이후 평균 선령은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세월호 침몰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조타기 작동 이상’은 전자 장비 때문이다. 선박 노후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두드려 봐야 할 돌다리들=서울의 남과 북을 세로로 잇는 20여개의 한강 다리들도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요소로 지목된다. 이들 가운데 30년 이상 된 노후 교량은 모두 9곳으로, 그간 땜질식 처방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확인결과 동호대교의 수중 우물통기초(콘크리트)는 과거 시행된 보수공사가 부실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수중에 있는 콘크리트 부위는 대부분 잠수부에 의해 실시되는데, 직접 들어가 확인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감독 소홀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과거 한강 다리 일부에선 우물통 표면이 패이고, 부식이 심화돼 철근이 드러나거나 심지어 바닥에 깊숙히 박혀있어야 할 콘크리트 구조물이 수중에 떠 있는 상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서울 소재 대학에서 토목 구조물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한강교량 안전점검에 나서기도 했고, 박원순 시장도 수중점검선을 타고 수면아래 잠긴 교량 다리 부분을 확인하면서 교량 안전 관리에 나선 바 있다.

▶하루 15만 타는 ‘고장철’=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든 고속철도 KTX도 대형 사고 위험 요소로 평가된다. 지난 23일에는 하루동안 두 번의 고장 사례가 발생, 가뜩이나 세월호 사고로 위축된 국민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었다. 이날 오전 6시에는 부산역을 출발한 KTX가 100m 가량 전진하다 고장 사실을 감지한 차장이 차량을 후진, 부산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후 1시께에는 오송역에서 제동장치 이상이 감지되면서 승객들이 열차를 옮겨타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열차가 제동장치에 이상이 생겼다면 그 결과는 상상키 어렵다.

코레일은 지난달 30일 KTX 개통 10주년을 기념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지만, 연이은 차량 고장 사례 앞에 ‘빠른 안정화’ 설명은 머쓱한 자찬이 되고 만다. 지난 10년간 KTX 누적이용객은 4억1400만명으로 전 국민이 8번 이상 이용했고, 하루 평균 이용객은 15만명이다.

▶또 다칠라…낡은 학교=서울 지역 학교시설 10곳 가운데 2∼3곳은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다. 사용을 중지하거나 보수가 당장 필요한 재난위험시설도 31곳이나 된다. 그러나 일부는 당분간 보수 없이 해당 시설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또 ‘돈’이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까지 서울 시내 초ㆍ중ㆍ고등학교 등 건물현황을 전수 조사한 전체 건물 3천451동의 24.3%에 해당하는 840동이 1980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197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도 332동이나 됐다.

이같은 낡은 교육환경은 또다른 참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서울지역은 재난위험시설 학교건물이 전국 17개 시ㆍ도 평균인 6.4개의 5배에 육박했다. 동작구와 용산구에 있는 초등학교 각 1개교(모두 5동)와 서대문구, 종로구, 성북구 소재 중학교 각 1개교(모두 3동) 등은 당장 보수가 불가능하다. 보강을 위한 예산 확보가 안됐다는 것이 이유다.

▶정부 뒤늦게 ‘종합점검’=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총체적 안전점검 실시를 지시했다. 세월호 사고가 계기였다. 국무조정실은 23일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수립하고 취약분야 점검에 나섰다.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국가산업단지, 가스ㆍ전기사고 취약시설, 교량ㆍ건축물, 도로변 낙석 및 붕괴위험지역, 철도ㆍ항만ㆍ터널 등 대형교통시설, 선박 등 해양시설, 키즈카페 및 놀이시설, 대형공사장, 원자력발전소, 쪽방촌ㆍ다중이용시설 등이 모두 포함됐다. 정부는 향후 2주 동안 계도 기간을 가진 다음 5월 9일부터 정부합동점검단을 투입키로 했다. 필요시 암행단속도 병행한다.

홍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