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드라마 제작 현장의 고질병이 풀렸다. 올 들어 사전제작 드라마가 봇물 터지듯 등장, 줄줄이 시청자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던 KBS 2TV ‘태양의 후예’는 100% 사전제작돼 방영을 마쳤다. 톱스타 송중기 송혜교, 톱작가 김은숙, 영화제작 배급사 NEW와 KBS가 만나 일군 성과가 상당하다. 드라마 제작단계에서 이미 방영권이 팔렸다. 130억원의 제작비, 회당 8억원에 달하는 비용은 드라마가 반환점을 넘기도 전에 충당됐다. 한중 양국을 뒤흔든 신드롬을 불러온 ‘태양의 후예’는 100% 사전제작 드라마의 첫 성공 사례가 됐다.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은 해묵은 과제를 안고 있었다. 쪽대본과 밤샘촬영이 난무하는 생방송 촬영현장에선 온갖 사고가 난무했다. 배우, 스태프들의 원성이 쏟아졌지만 제작 시스템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살피며 내놓은 드라마가 시청률과 해외 판매에서 좋은 성과를 내자, 방송날까지 촬영이 이어지는 생방송 드라마는 제작현장이 관행이 됐다. 장점은 있었지만 현장에서의 급박한 일정에 쫓겨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가 숱하게 나왔다. 생방송으로 촬영되는 현장의 병폐였다.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고질병을 푼 건 전 세계 대중문화 시장의 ‘큰 손’ 중국이었다.
지난해 말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전제작 드라마 열풍은 중국의 한국드라마 규제에서 비롯됐다. 올 1월 중국 방송 담당 정책부서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TV에만 적용하던 사전심의제를 인터넷까지 확대적용했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방영되기 위해선 방영 6개월 전부터 프로그램 계획을 받고, 3개월 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
제작사와 방송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수시장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일본 한류로 숨통이 틔었던 대중문화 시장은 ‘별에서 온 그대’(SBS)의 성공 이후 중국 시장에서의 한류 가능성을 봤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현재 인구수에 비해 채널과 콘텐츠의 제작 편수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며 “업계에선 우스갯소리로 내수 엔터시장이 살아나려면 인구수가 8000만 명이 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국내 로컬 수요로는 이미 한계가 왔고,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선 상황에 나날이 달라지는 규제 방식은 수출길이 막는 난관이었다. 제작사, 방송사는 이같은 이유로 중국에서 사전심의를 받고 동시 방송을 하기 위해 드라마 업계의 고질병을 고치기 시작했다.
KBS 관계자는 “한국에서 먼저 방영된 이후 시차를 두고 중국에서 방영될 경우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인해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고,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수현 공효진 아이유 차태현이 출연했던 KBS2 ‘프로듀사’가 대표적이었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국장은 “나날이 치솟은 제작비를 메우기 위해선 해외 판매가 가장 중요한데, 불법 유통이 많아지면 판매과정에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 이미 드라마 촬영 전 중국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에 판권을 팔았다. ‘동시방송’을 약속하고 회당 25만 달러에 사전 판매했다. 드라마는 이를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며, 130억원을 투자한 블록버스터급 재난 멜로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시장 환경의 변화는 국내 드라마 업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호재’라고 말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안정적인 시간과 탄탄한 자본이 결합돼 태어난 대표적인 드라마가 ‘태양이 후예’다. 이 드라가 사전제작 드라마의 정착과 진화로 가는 교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시장을 겨냥했다지만 이를 발판 삼아 제3의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대도 커졌다. 식어가던 일본 한류시장에서 ‘태양의 후예’가 약 20억원에 팔린 것 역시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로보는 관계자들이 많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 검증된 한국 드라마 등의 콘텐츠들은 이 시장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아시아뿐 아니라 중동 남미 유럽 등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봤다. 이 역시 ‘태양의 후예’가 대표적이다. 드라마는 이미 이미 중국, 일본, 대만,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 스페인, 폴란드, 벨기에, 러시아, 핀란드, 터키, 이란 등 전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물론 가장 비싼값에 팔린 곳은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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