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대기업 회장, 중소기업 대표 등 기업인들이 해외 원정도박의 늪에 빠져 결국 쇠고랑을 차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하지만 알선업자들의 단속 회피 기법이 교모해지면서 실제 적발되는 경우는 새발의 피 수준이다.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정부차원의 더욱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외국을 드나들며 도박을 벌인 유명 기업인 A 씨를 내사하는 것으로 5일 전해졌다. 검찰은 최근 검거한 폭력조직 서방파와 학동파 조직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A 씨의 원정도박 단서를 포착했다.
이들 조직은 마카오,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서 카지노 VIP룸을 운영하다가 적발됐다. 이들의 알선을 받아 총 90억 원대 노름을 한 상장기업 대표 오모 씨와 10억원대 도박판에 끼어든 중견기업 E사 대표 정모 씨는 이미 기소됐다.
원정도박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롤링업자(카지노 에이전트)’로 불리는 브로커 때문이다. 대개 폭력조직과 연계된 이들은 고액 도박을 즐기는 기업인 등에게 무료 여행 등 편의를 제공하면서 도박판으로 유인한다. 최근 검찰에 적발된 롤링업자 정모(37) 씨는 폭력조직 ‘학동파’ 출신이다.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 등 세계 유명 카지노의 VIP룸을 빌려 도박장을 열기도 한다. 고액 자산가들에게 수억원의 도박자금을 빌려주고 고리 이자를 뜯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수사기관의 단속이 강화되자 원정도박 수법이 더욱 교묘해졌다. 도박하는 사람은 한국에 머물고 속칭 ‘아바타’로 불리는 현지 대리인이 도박에 참가해 수수료를 제한 돈을 넘겨주는 수법도 생겼다. 수사기관의 단속을 회피하기 위한 신종 도박이다.
원정도박에 나서는 내국인이 늘어나는데도 단속은 좀처럼 쉽지 않다. 수사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외국에서 범행이 이뤄지는데다 전문 브로커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김현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전문위원은 “원정도박은 국외에서 이뤄지는 범죄의 특성상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 형사처벌이 곤란하다”고 진단했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늘어나는 원정도박 행위에 대한 대응 노력을 서두르지 않으면 도박 시장 특성상 규모가 삽시간에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