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메르스 여파로 부도…가족은 암투병·백혈병… 백화점 지하주차장서 여성 협박…배곯아 힘없어 범행 실패

고등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 커터칼을 들고 여성을 위협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과조차 없는 한 집안의 가장을 범죄로 내몬 것은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생활고였다.

경기도에서 학교 건축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했던 ‘사장님’ A(52) 씨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여파로 학교 공사가 급감하며 부도를 맞았다. 올해 재기를 꿈꿨지만 하늘은 도와주지 않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확산되며 예정된 공사가 줄줄이 취소된 것이다. 불과 1년여만에 A 씨는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나빠졌다.

거주하고 있던 경기도 문산의 자택도 식당에 딸린 ‘컨테이너’로, 지인이 마련해준 임시거처였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암 투병에, 형은 백혈병을 앓았다. A 씨는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이후 강남 거리를 정처없이 돌아다녔고, 하룻밤을 공원에서 보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딱 5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부자가 많이 산다는 서울 강남에 가서 사정하면, 양심있는 사람이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거리에 외제차가 너무 많아 놀라던 차, 여성이 외제차를 몰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A 씨는 5일 오후 9시께, 폐점시간이 돼 한적했던 서울 강남구의 한 유명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결심을 실행으로 옮겼다. 쇼핑을 마친 B(60ㆍ여) 씨가 외제 승용차를 타고 시동을 거는 순간, 조수석에 올라타 공업용 커터칼을 들이댄 것이다.

그는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했지만 B 씨는 출발하지 않고 “그냥 돈을 다 가져가라”며 A 씨와 승강이를 벌였다. 그 순간 A 씨는 힘없이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전날부터 식사를 하지 못해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B 씨는 차 밖으로 나가 비명을 질렀고, A 씨는 황급히 현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A 씨는 폐쇄회로(CC)TV에 덜미를 잡혀 범행 5일만인 지난 10일 오후 컨테이너 자택에서 체포, 11일 강도상해혐의로 구속됐다.

박혜림 기자/


r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