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뒷 얘기를 마냥 묻어두는 게 미덕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더구나 이것은 국정과제”여서다. 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 잔칫상을 받는 대신 발표한 ‘경제혁신3개년계획’과 ‘담화문’ 얘기다.
그는 25일 국민 앞에 서서 41분간 담대하게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지만 세종시를 포함한 관가는 대혼란에 빠졌다. 애초 청와대와 입을 맞췄다던 혁신의 세부과제 100개 가운데 44개가 무더기로 빠진 게 속속 드러나면서다. 낙하산을 막는 공공기관 임원 인사 혁신과 같은 파급력 있는 내용도 증발했다.
언론의 진상파악이 빗발쳤다. 계획마련의 ‘현장 컨트롤타워’였던 기획재정부가 ‘몸으로’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이 보다 쉽고 핵심적인 과제에 집중하겠다며 직접 챙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첨삭은 이날 담화문 발표 직전까지 이어졌다.
한 고위공무원은 “(계획에 포함됐다 빠진 건)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든지 경우에 따라선 안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진본(眞本)은 각 부처가 준비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담화문’에 담긴 것이라고 교통정리도 했다.
경제혁신을 말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한 것도 막판에 포함시킨 사안으로 전해진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연장선상으로 보면 된다”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한국의 경제적 대도약을 이루기 위해서 나온 것이고, 통일준비위 구성은 그 연장선상에서 한반도의 또 다른 대도약을 이뤄내기 위한 대통령의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박근혜표 혁신계획’이고 저작권자가 대통령이니 딴지를 걸 공무원이 나올 수 없고, 나와서도 안 된다. 우려되는 건 후폭풍이다. 이런 ‘막판 뒤집기’식의 정책 취사선택은 ‘박근혜 바라기’와 복지부동을 심화할 수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은 부차적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번 계획을 만들기 위해 현장 공무원들은 박 대통령의 신년구상 발표 이후 50일간 불면(不眠)의 시간을 보냈다. 냉정하게 보면 새로울게 없는 백화점식 정책 나열이었지만, 실무자들은 어쨌든 박 대통령 눈높이에 맞게 정책적 ‘러브레터’를 쓰려고 노력했다. 통일만큼 힘들 수 있는 정부부처간 협업을 위해 압축적으로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반송되거나 수취인불명인 ‘러브레터’ 투성이다. 이래서야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협업이 긴 호흡으로 갈지 불투명하다. 현진건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가 국정과제와 같은 중차대한 과업에 오버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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