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정글 같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직업을 초월해 누구나가 안고 있는 과제다. 일도, 연애도 마찬가지다. 익숙해질 무렵 안정기에 접어들지만, 그 때 비로소 위기가 온다. 익숙한 것은 새로운 것 앞에서 별로 힘이 없다. 그것은 때에 따라 세대교체라는 말로, 이별의 순간으로 찾아온다.
지난 12일 방송된 KBS2 금토드라마 ‘프로듀사’가 보여준 ‘결방의 이해’는 삶의 모든 순간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다방면으로 엮어 보여줬다.
늘 새로운 얼굴을 요구하는 연예계에서 걸그룹 출신 여가수의 수명은 위태롭다. 드라마 속 톱가수 신디(아이유 분)는 잘 짜여진 시스템 안에서 태어나 정상에 올랐지만, 누군가의 등을 밟고 올라선 자리를 보존할 순 없다. 자신의 자리는 ‘제2의 신디’에게 내줘야 한다.
오랜 시간 함께해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관계이지만 탁예진(공효진 분)의 곁에 다가와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는 백승찬(김수현 분)으로 인해 라준모(차태현 분)는 불안하다. ‘우정과 사랑 사이’로 곁을 지켜왔는데, 새로운 사람의 등장은 우정도 사랑도 흔든다.
시청률에 울고 웃는 방송가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방송가 사람들은 소위 ‘건전한 경쟁’이라 말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은 기존 방송 프로그램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다. 절대 다수를 대상으로 더 재밌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의 입장에선 당연해보이지만 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개개인의 입장으로 돌아가보면 잔혹한 게임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생명 연장을 바라는 PD와 쓸모가치가 없다고 느끼면 가차없이 프로그램을 내려버리는 사측의 입장도 충돌한다. 최근 방송가는 실제로 수많은 파일럿 프로그램이 ‘정규편성의 꿈’을 안고 태어나고 있으며, 많은 프로그램이 새 프로그램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시청률이 저조한 프로그램의 경우 믿고 봐주는 시간도 짧아졌다. 고작 3개월도 되지 않는다. ‘프로듀사’에도 이제 막 새 시즌을 시작한 ‘1박2일’ 자리에 새로운 파일럿 프로그램을 앉히며 방송사는 간을 봤다.
예능국 이야기라는 틀 안에서 방송사와 연예계가 긴밀하게 엮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한 회분의 주제를 러브라인으로도 확장했으나 이는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겪어야 하는 위기와 불안, 끊임없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기도 했다.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장면 역시 그 과정을 받아들인 톱가수 신디의 1위 소감 장면에서 나왔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톱가수는 이제야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한다. 똑같은 과정을 거쳐 최고가 됐고, ‘세대교체’의 숙명 앞에 자기 자리를 내줘야 하는 톱가수는 “오늘 이 상은 저에게 참 여러 가지 의미”라며 그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다.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으며 새로운 길을 가는 과정이었다.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냉혹한 세계를 알고 있기에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며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아픔에 연연해선 안된다는 것을 자신의 입장에만 충실했던 톱가수 신디의 수상소감에서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장면은 전국 12.6%, 수도권 13.5%를 기록한 이날 방송분에서 18.5%(수도권 기준)까지 치솟으며 ‘최고의 일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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