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가미카제 전투기 설계자 삶 시대적 고뇌없이 동화로 표현

위안부 문제 日 비판하면서도 작품속 전쟁부역자 미화 논란 거장 역사의식에 물음표 남겨

[도쿄(일본)=고승희 기자]‘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의 한 구절이다. 어떤 가혹한 바람이 불어올지라도, 그로 인해 뒤틀리고 모진 풍파를 맞을지라도 ‘살아야겠다’는 생을 향한 의지와 갈망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시구를 자신의 새 애니메이션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미야자키 하야오(72) 감독이 5년 만에 돌아왔다. 신작은 전작들과는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다뤘고, 처음으로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전쟁의 위험성을 항변하고, 순수한 동심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던 그의 세계관이 이번엔 자국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발행한 소책자 ‘열풍’ 7월호를 통해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을 비판하고, 한국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작에 사과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그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센’ 설계자의 삶을 다뤘다. 호리코시 지로(1903~1982)는 “전시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비참했다”고 했을 만큼 시대는 가혹했다. 그럼에도 그는 군수회사 미쓰비시에서 일본의 주력 전투기를 만든 역사 속의 이름이다.

그 이야기가 지난 26일 도쿄의 도호 스튜디오 시사실에서 한국 기자단에게 처음으로 공개됐다. 앞서 20일 개봉한 일본에서는 전쟁 부역자들을 미화했다는 비판과 더불어 이와 정반대의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 비행기에 그려진 일장기가 산산이 떨어져나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내에서도 태평양전쟁의 일등공신으로,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공격에 쓰인 제로센 설계자의 삶을 여유롭게 포용하기엔 적지 않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유년시절부터 비행기 설계자를 꿈꿨던 호리코시 지로의 ‘아름다운 꿈’과 그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더불어 관동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 그 지독한 가난을 이기기 위한 경기재건책으로 전쟁을 택했던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을 담으면서도, 동시대 ‘일본의 위기’를 향한 감독의 애틋한 시선도 함께 담았다.

아쉬운 점은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씩 발견된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재를 다뤘으면서도 거장 감독에게 기대한 역사의식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역사관과 시대적 고뇌는 없이, 그의 꿈과 사랑에 집중한 ‘아름다운 동화’로 그려진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태평양전쟁 시기를 소재로 했지만 전쟁 장면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역사의식과 시대비판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행기에 붙어 있던 일장기가 떨어져나가는 장면이나 “비행기 연결고리 한 개를 만드는 비용이면 가난한 어린아이가 몇 년간 덮밥과 카스테라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대사, 비행기 설계자의 꿈을 키우는 호리코시 지로가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수단도 아니다. 아름다운 꿈”이라고 말하지만 그에 대해 “비행기는 아름다워도 저주받은 꿈”이라고 말하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비행기 제작자인 카프로니를 통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도 담았지만, 그것뿐이다.

결국 영화는 호리코시 지로가 20년이나 뒤처진 일본의 비행기 기술을 단시간에 앞당겨 1939년 연합군을 능가하는 전투비행기 ‘제로센’을 만들어내는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감독은 “그의 삶이 맞았다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불행한 삶이었다”고 했지만, “전력을 다해 살아온” 그 치열한 삶이 ‘살인무기’를 만들어냈다는 모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부족했다.

영화는 일본 개봉과 함께 제70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국내 개봉은 9월 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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