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재현 기자]‘무소불위’로 비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도 국회, 법원등 여러 견제 세력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최근 대통령의 권력을 가장 강하게 견제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한 것은 바로 ‘검찰’이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법을 통해 상대의 잘못을 재단하고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검찰의 힘은 문민정부 이후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검찰 역시 행정부에 속한 법무부 소속의 공무원인 만큼 대통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해지면 대통령의 충견(忠犬) 노릇을 하다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들 때면 대통령의 감시견 역할을 하며 60여년 동안 대통령과 검찰은 요상한 공생관계를 맺어왔다.

1948년, 검찰이 태동한 이후 초창기에는 검찰은 대통령의 견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관계정립을 시작했다. 1949년 4월, 임영신 당시 상공부장관이 각종 이권에 개입해 수 천만원의 돈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검찰에 임 장관을 기소하지 말라는 압력을 행사했지만, 검찰은 이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최대교 당시 서울지검장은 임 장관을 포함해 관련자 18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결과는 차가웠다. 정부는 최 검사장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했고 결국 최 검사장을 비롯해 10명의 간부급 검사들이 사표를 냈다. 검사도 행정부 소속의 공무원인 만큼,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의 정치중립성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이었다.

검찰은 1950년 4월에도 대통령과 한번 더 충돌했다. 정치브로커 김태수ㆍ김낙영 등이 공산게릴라가 봉기해 경무대를 습격하고 정부요인을 암살하려 한다는 허위정보를 보고한 뒤, 이승만의 허락을 받아 사설 수사기관을 만들고 무고한 사람을 공산당으로 내몰았다. 이른바 ‘대한정치공작대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제2대 검찰총장이었던 김익진 검찰총장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은 이 사건에 일체 관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도 정치공작대원 108명을 검거하고 정치공작대장 김기수 등 11명을 기소했다. 또 한번 대통령에 항명한 셈이다. 그 결과 김 총장은 두 달뒤 서울고검장으로 좌천하게 된다.

이렇듯 대통령의 권력에도 굴하지 않던 검찰은 그러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힘을 잃고 만다.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같은 정보기관들에 의한 공작정치가 시작되면서 검찰의 힘이 위축됐다. 검찰은 정보기관에 의한 각종 조작간첩사건과 인권유린 사건을 기소해 법원에서 유죄를 받아내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인혁당 사건이었다. 1964년 8월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 부장은 도예종, 양춘우 등 4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에도 이용훈 부장검사, 강원찬 검사 등이 있어 사건의 증거가 없다고 기소를 거부하지만 곧 담당검사가 교체되고, 한옥신 담당검사는 반국가단체 조직구성이라는 죄명은 빼고 47명 중 26명을 기소한다. 이후 검찰의 재수사 과정에서 14명은 무죄로 풀려나고 13명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민청학련 사건 등에서도 검찰은 중정의 조작사건을 그대로 받아 기소하는 힘없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도 크게 달라진 모습은 없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는 최환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이 박종철 사체 부검을 실시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기여했지만 검찰 지휘부와 담당 검사 안상수는 경찰과 안기부가 주도한 은폐조작을 적극 수용하는 등 권력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1991년에는 검찰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도 발생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과거와는 달리 직접 사건을 조작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김영삼 정권 시절 검찰은 12ㆍ12사건과 5ㆍ18사건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가 국민들의 반발에 의해 재수사에 착수, 전두환ㆍ노태우 등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했다.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문다”는 검찰의 정체성 고백은 바로 이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문민정부 시절부터 검찰은 단순히 대통령의 명령을 듣고 따라하는 ‘충견’을 벗어나 서서히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견제를 시작한다. 이는 주로 친인척 비리에 대한 수사로 나타났다. 1997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2002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과 3남에 대한 수사를,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에 대해 수사했으며 2012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씨 및 주요 측근들을 기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성역없는 수사”라는 평가도 있는 반면 “임기 말 저물어가는 권력을 노린 보여주기식 수사, 자기 조직의 이익과 권력확대를 위한 조치”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결국 검찰의 이런 모습들은 지난해 말 대선과정에서 중요 이슈가 됐던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불러오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검찰 개혁안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특히 검찰의 인사가 정치권에 의해 좌우되고, 검찰들은 인사권에 목메 정치적으로 예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박 당선인은 검찰총장을 ‘검찰총장후보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물로 임명해 대통령의 직접적인 인사권 행사를 막고, 국회 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하도록해 야당의 권한을 높여줬다.

이외에도 ‘검찰인사위원회’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고등 및 지방검찰청 검사의 보직은 소속검사장이 결정하도록 해 검찰 기관의 독립성을 높여준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검사의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하고, 법무부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호사 또는 일반직 공무원이 근무토록 해 검찰과 행정부간의 지나친 밀월관계를 막는다는 것이 박 당선자의 구상이다.

이런 개혁안들은 분명 대통령-행정부 종속적이던 기존의 인사구조에 비해 한발 더 진일보한 모습으로 검찰의 정치 중립성을 확대할 수 있는 조치라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자기 조직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막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보다 더 나아가 검찰총장 직선제를 통해 일반 시민이 검찰 총장을 뽑도록 해야 한다거나, 기소배심제도를 통해 검찰 비리 사건이나 정치인 수사사건의 경우 국민이 직접 기소 여부를 결정케 해야 검찰이 진정한 정치중립과 공정성을 획득하고, 법에 따라 대통령의 권력에도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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