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0회> 총칼 없는 전쟁 20
“앙투아네트가 다 벗었냐고요?”
“가만있어 봐요. 지금 막 무릎까지 내려왔어요. 흐미~.”
“뭐가요? 뭐가 무릎까지….”
“거 왜 있잖아요…, 삼각형!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
경찰들이 뒤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열심히 라이브 영화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사실 현성애도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지만 공연히 낯이 뜨거워지는 걸 감추기 위해 중얼거리는 상황일 뿐이었다.
“앙코르와트가 어느 나라의 자존심이냐고요? 그야… 동남아국가 캄보디아의 자존심 아닙니까?”
경찰관 채용시험에 그런 문제가 출제되었을 리도 없건만… 경찰관 한 명이 이렇게 너스레를 떨며 1974년산 치타 옆으로 다가왔다. 앙투아네트건, 앙코르와트건 그는 무슨 구경거리인가에 관심이 갈 뿐이었다.
그러나 라이브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중이었으므로 권도일과 현성애는 양옆에 두 명의 경찰관이 따라붙었다는 사실도 감지하지 못했다. 원래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는 도둑놈과 그를 쫓던 경찰관이 함께 서서 구경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뭡니까? 조금 옆으로 비켜 서봐요.”
“그만 밀어요. 젤 중요한 순간에 왜 이래요?”
경찰관 두 명을 비롯한 권도일과 현성애는 줄줄이 차창 옆에 자리를 잡은 채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편 1974년산 치타 내부에서는… 나름 바쁜 두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상열지사에 몰입하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 유호성은 아예 몸통을 외로 꼰 채로 엎어져서 여자 주인공 강유리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아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강유리는 머리통 전체에 레이싱 헬멧을 뒤집어쓰고 고글마저 내리덮었는데… 게다가 감미로움에 빠져 두 눈까지 지그시 감고 있었으니.
하지만 매사에는 예감이라는 것이 있는 법. 뭔가 서늘한 것 같기도 하고, 야릇한 기운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녀는 슬며시 눈을 떠보았다. 내리덮은 고글이 워낙 짙은 유리로 되어 있는 데다가 선팅된 유리창마저 검어서 밖이 제대로 내다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유리창 표면으로 뭔가 쇠붙이처럼 번쩍이는 것이 움직인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어머, 호성 오빠, 저거….”
“저거? 저게 뭔데?”
“무궁화,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아니… 독수리!”
짙은 고글 너머로 선팅된 유리창이 이중으로 가리고 있었으니, 창가에 어른대는 참수리 무궁화 경찰 모표를 제대로 식별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경찰 모표가 쇠붙이로 되어 번쩍였기 때문에 겨우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인데… 잔뜩 달아오른 유호성은 잠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투로 성의 없이 대답할 뿐이었다.
들여다보는 경찰관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경찰관 역시 짙은 선글라스를 낀 상태에서 짙게 선팅된 유리창 안을 훔쳐보는 중이었으니, ‘장님이 불 끄고 영화 구경’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어이고! 난리 났군…. 한참이 지나서야 무궁화 참수리 마크의 정체를 알아차린 강유리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 경찰이 들여다보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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