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5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4
“이혼을 축하합니다, 회장님…음무하하!”
강준호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남의 이혼에 이리도 기뻐하긴 아마 머리에 털 나고 처음인 것 같았다.
“고마워요. 나도 속이 후련해요.”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드님이 소유한 주식 10%를 우리에게로 끌어와야 진정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지요.”
단지 이혼을 했을 뿐인데 ‘우리’라는 말과 ‘회장님’이라는 호칭이 무척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법원에서는 예상했던대로 술술 판결을 내려주었다. 하긴 다 큰 어른들…아니, 곧 늙어 죽을 노인들이 합의하여 이혼하겠다고 나섰으니 굳이 말릴 필요도, 재간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재산 분할도 끝났으니 회사부터 새로 정리해야지요. 우리가 차지한 회사에 유민 회장의 이름자를 굳이 물려받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이참에 아예 회사 이름부터 바꿔버립시다. 유민식품이 뭐야? 촌스럽게.”
강준호는 유민그룹의 계열사인 ‘유민식품’의 명칭부터 들먹였다. 재산분할 과정에서 신희영의 몫으로 떨어진 작은 식품회사였지만 수년간 흑자를 내온 알짜회사였으므로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했다.
“회사 이름을 바꾸면…브랜드를 새로 알리는 데 큰 돈이 들어가지 않을까요? 공연히 흑자행진에 코 빠뜨리는 건 아닐까 몰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촌스럽게 유민식품이 뭐예요? 하다못해 ‘YM푸드’라면 몰라도.”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그래도 화장실에 ‘남자용’이라고 쓰는 것보다 ‘신사용’이라고 쓰는 게 폼 나잖아요? 이름이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이른바 네이밍 전략!”
“어쨌거나 우리도 인수위원회를 조직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뭐 아는 게 있어야 면장을 해먹지? 허구한 날 골프나 치고 다녔으니 막상 회사를 넘겨받은들 요리를 할 수가 있어야지? 이럴 때 한 군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 군이라뇨?”
“한승우! 언젠가 우리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섀도캐비닛을 짰을 때…한승우가 전략기획실장 자리를 맡았었지요?”
이크!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강준호는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을 때처럼 몸을 바짝 웅크렸다. 강준호에 비해 산전수전을 겪어낸 경험은 모자라지만 젊고 싱싱한 육체와 지략을 겸비한 인물 아니던가.
“그 작자를 어째서 거론하십니까? 그 작자야말로 따님 한솜이를 자빠뜨리기 위해 무진장 애쓰던 자 아니었나요?”
강준호는 무작정 손사래부터 쳤다. 하지만 신희영은 한승우를 애잔하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녀의 스마트폰에는 한승우의 전화번호가 단축번호 0번으로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단축번호 0번은 자기 영혼을 맡겨도 좋을 만한 사람으로 지정해 놓는 법 아닌가.
“차라리 한승우 실장이 그년을 자빠뜨렸더라면…지금처럼 원수 집안의 늙은이에게 쫓아가서 휠체어나 밀고 있진 않았을 거예요.”
불 난 집에 부채질? 한승우를 비방하기 위해 유한솜의 이름을 꺼낸 것이 오히려 커다란 부채를 건네 준 셈이었다. 갑자기 집 나간 딸이 그리워졌던 것일까? 그게 한이 되었던 것일까?
신희영은 한동안 울먹이고 나더니 느닷없이 폭탄선언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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