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3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2)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사랑하는 남자의 외도를 목격한 여자 치고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척을 했지만… 강유리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동안 3류 드라마가 유치하다고 흉을 보았어도, 이런 경우엔 그 드라마 장면처럼 상대 여자의 머리끄덩이라도 실컷 잡아당겼더라면 속이 후련했을 것이라 여겨졌다.
“아빠, 나… 유민 그룹의 비서실장이 확실히… 되는 거야?”
역시 그녀의 마음을 달래 줄 사람은 아버지 강준호 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기를 통해 이렇게 하소연 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니? 호성이 녀석 눈이 홀랑 뒤집어지도록 꼬여놓는다더니… 바람이라도 맞은 게야?”
“바람은 무슨… 지금 막 호성 씨 혼을 빼놓고 나오는 길예요.”
“그래? 잘했다. 역시 내 딸이야. 이제 딱 일주일만 참으면 만사 끝이다. 유민 회장과 신 여사 간의 이혼판결이 나기만 하면…”
하지만 강준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랑 유호성 씨랑 결혼하게 되는 거예요?”
아뿔싸!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강준호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냐고? 그는 이혼판결이 나는 순간 신희영과 약혼 할 요량이었다. 그런 후에 법으로 제약된 6개월이 지나면 곧바로 그녀와 결혼해서 꿈에도 그리던 유민 제련그룹의 사장 자리에 오를 계획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너랑 호성이랑 결혼을 해? 그럼 나랑 신 여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뭐예요? 아빠랑 신희영 회장이랑… 그렇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이고,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구나. 이걸 어쩐담?”
생각해 보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3류 연속극이 별건가? 강준호가 신희영과 결혼해야 정답일 것 같은데… 강준호의 딸이 신희영의 아들과 결혼할 생각을 하다니… 그야말로 콩가루 난장판이 되기 직전이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이 급했던 까닭이었다. 마음이 급하면 눈앞의 기둥도 들이받게 된다더니 가장 기본적인 사항부터 점검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유민 제련그룹의 10%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유호성의 마음을 빼앗아 오려는 작전이 이리도 치졸했단 말인가?
“아빠! 여태껏 제게 부탁한 일이 진심이었나요?”
“물론 진심이었지.”
“어떻게 아빠가 신희영 회장님과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나에게 호성 씨를 꼬여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게 진심이에요?”
“나와 신 여사와는 이왕 엎어진 물과 같은데 어떡하니? 내 말은 일단 네가 유호성을 꼬여놓고, 10퍼센트 주식을 빼앗은 다음에…”
강유리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전화기에서 배터리를 분리해 내고는 무작정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왕 엎어진 물… 바닥에 흐른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제 어떡하지?’
강유리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진 유리와 같았다. 인위적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유호성을 사랑하는 것만 같았다. 하필이면 왜 유호성일까? 그녀는 차디찬 길거리에 주저앉아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신희영과의 관계도 마음에 걸렸지만… 언젠가 유민 회장과 몽고여행을 다녀온 일도 여전히 마음에 걸리곤 했다. 비록 불상사는 없었을지언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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