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7회> 총칼 없는 전쟁 (4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5개국 관통 랠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개최국 대표 드라이버 자격으로 항저우에 도착했건만, 취재 나온 기자들이 서너 명밖에 없다니… 그야말로 유호성에겐 쇼킹한 사건이었다. 마이클 잭슨이나 휘트니 휴스턴, 싸이 등등의 월드스타 급 대접을 기대했던 그로서는 못마땅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게 말이나 돼요? 무슨 착오가 생긴 건 아닐까요?”
유호성은 즉시 재벌 아들 티를 내기 시작했다. 지구는 원래부터 재벌 아들을 중심으로 돈다고 했던가? 지구, 태양, 달, 하늘이 재벌 아들을 중심으로 도는 판에… 기자 나부랭이들이 어영부영 딴 짓을 하다니.
“경기가 시작되면 달라질 거예요. 전 세계 언론이 관심을 기울일 걸요?”
“다른 나라 기자들은 몰라도 최소한 KBS, MBC, SBS 기자들은 공항에 나와 있어야 하잖습니까? 우리 회사가 얼마나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부어 가면서 저희들을 먹여 살리는지 모르는가 보죠? 내 이것들을 그냥…”
이것들을 그냥… 어쩌자는 것일까? 유호성은 즉시 로밍 된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제 아버지인 유민 회장에게 푸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마보이로 평생 살아 온 꼴값을 하는 것인지, 어리광 반, 푸념 반이 섞인 엄포를 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꼴을 보고 있는 권도일과 현성애도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재벌이면 다 같은 재벌인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회사인 거성그룹에 비하면 유민 그룹이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그런데도 유호성은 국내 방송사들을 모두 먹여 살립네 어쩌네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으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도 가관이었다.
“방송사들 군기 좀 잡아야겠어요, 아버지. 이거 원, 쪽 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있어야지요. 그리고… 아랫것들한테 일 좀 똑바로 하라고 지시하세요. 항저우 공항이 버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해 푸동 공항에 내려서 여기까지 고속철로 왔다니까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랠리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을 다 뺐단 말입니다.”
유호성은 목에 핏대를 올리며 떠들어 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와 죽이 맞아 통화하고 있는 유민 회장의 태도였다.
“그래? 그게 얼마나 큰 행사인지도 모르나? 엄청나게 차려놓은 잔치에 파리만 날다니… 알았다. 문제가 엄청 심각하구나. 내가 당장 팔 걷고 나서서 일을 처리하마. 그러니 더 이상 염려 붙들어 매.”
통화는 대충 이렇게 끝났다. 유호성은 그제야 분이 풀린다는 듯 어디 좋은 식당 없나요? 내가 듣기로 ‘루외루’라는 식당이 좋다던데… 거기 꽃게 튀김이 죽인다더군요, 어쩌고 하면서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통화를 마친 유민 회장은 급히 비서들을 불러들였다. 당장 언론플레이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유민 회장이 언론플레이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아들 유호성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큰 잔치를 벌려놓았으니 이제부터 만천하에 소문을 내야 마땅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마터면 벙어리 잔치로 끝날 뻔 했지 뭐야.’
그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거진천, 사후용인이라… 예로부터 우리는 진천에서 살다가 용인에 뼈를 묻으면 행복한 삶을 산 것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항저우에서 태어나 쑤저우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최선의 행복으로 여긴다고 한다. 항저우는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다. 오죽하면 ‘하늘 위에는 천당이 있고, 하늘 아래에는 항저우가 있다’고 했을까.
“한 시간 동안 고속철을 타고 오는 동안 주위 풍경이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랠리 경기가 시작되면 편히 볼 수 없을 경치라 여기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저 화상은 뭐가 어째? 힘들어서 진이 다 빠져?”
“어차피 제삿날 잡아놓은 놈인데 그냥 내버려 둬요.”
권도일과 현성애는 이렇게 귀엣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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