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6회> 총칼 없는 전쟁 (3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된 것일까? 김상곤 이사를 필두로 박인협 이사, 신후철 이사, 위병탁 부장, 피규민 부장이 ‘유리의 성’으로 들이 닥쳤다. 그 들 뒤로도 두 명이 더 따라 들어왔는데 유민 회장은 도통 그들 두 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감히 저희가 합석해도 되는 자리인지 모르겠습니다, 회장님.”

가뜩이나 그들의 정체가 궁금하던 차에 이런 인사를 듣게 되었으니 그는 더구나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따라온 걸 보면 초대받은 사람임엔 분명한데… 술이 원수인가? 술에 취해서 초대했던가?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가 요즘 갑자기 늙었나? 정신이 깜빡깜빡 한단 말입니다. 갑자기 두 분 성함이 도통 생각나질 않아요. 이걸 어쩌지요?” 때론 정면 돌파가 해답이라고 여긴 유민 회장은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작정하고 이렇게 물었다. 오늘 하룻밤을 진탕 놀고 마실 자리인데 성도, 이름도, 정체도 모르고 지낼 수야 없을 테니까.

“허허허! 능히 그러실 수 있지요. 전화 한 통화 했을 뿐, 초면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도종호라고 합니다. 거성그룹 전략담당 상무로 재직 중이고요, 이 분은…”

“네, 저는 송달민이라고 합니다. 이 회사, 저 회사 찾아다니면서 업무 조인하는 일로 먹고 삽니다. 흔히들 로비스트라고 하더군요. 반갑습니다.”

도종호와 송달민이 깍듯한 자세로 인사를 했다. 유민 회장은 그제야 두 사람을 기억할 수 있었다. 아하! 그랬지… 내 아들 유호성을 거성 그룹 랠리 팀의 드라이버로 꼬여 간 작자들이었지…

순간, 유민 회장은 긴장했다. 어쩜 이 두 사람을 초대한 사실 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그러면서도 어떻게 일곱 명이란 숫자는 기억하고 있었을까? 하여간 난감하기만 했다.

유민 회장이 그들을 부른 이유는 명쾌했다. 아들 유호성이 그들을 철석같이 믿고 따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녀석이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군들 그에게 주식을 위임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확률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몰라도… 신희영과 이혼 한 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모든 지인들과도 등졌다고 여기는 유호성이 이들에게 주식을 위임할 소지는 충분했다.

“아하! 이제 기억이 납니다. 도종호 상무님, 그리고 송달민 선생님! 참 잘 오셨습니다. 반갑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유민 회장은 호들갑을 떨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래, 이놈들아! 부른다고 정말 왔니? 어쨌거나 잘 됐다. 너희들을 오늘부로 내 수족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

유민 회장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쓸개라도 빼줄 듯이 칙사 대접을 하기에 여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송유나의 예쁜 동생들이 도합 세 명 밖에 없다는 점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생전 대면조차 하지 못한 처지에 룸싸롱으로 초대 해놓고 파트너도 없이 자작하라는 건… 정말 큰 결례였다. 자칫하다간 오히려 유호성의 주식 10%를 싸잡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었으므로.

“이봐 송 마담! 예쁜 동생들이 세 명 있다고 했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두 명은 일대 일로 파트너를 맞춰줘야 할 입장이라고.”

화장실을 핑계로 급히 송유나에게 찾아간 유민 회장이 난색을 표했다.

“어떡하겠어요? 닥치는 대로 해결해야지요. 두 명은 각자 파트너를 정해주고… 나머지 한 명이 다섯 명을 상대로 필살기를 발휘해야지요.”

송유나는 문득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하는 카마수트라의 비법을 떠올렸다. 이른바 Congress between One and Many! 그야말로 필살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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