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대법원이 정상적인 혼인관계 중 벌어진 부부강간을 최초로 인정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법원은 이제까지는 부부가 이혼의사를 나누는 등 실질적인 부부관계로 인정될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배우자에 대한 강간을 인정해왔다. 사회통념의 변화에 발맞춘 법 개정으로 인해 동성과 성전환자를 대상으로 한 유사 성행위에 대해서도 강간죄가 성립되는 세상이지만, 배우자 대상의 강간은 아직 인정되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는 지난 18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아내(41)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A(45) 씨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앞서 A 씨는 2001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에 전자발찌 착용 10년, 2심에선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이번에 대법원이 A 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면 43년만에 판례가 바뀌게 된다.

공개변론에서는 부부강간죄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검찰은 “부부관계의 특수성이나 가정유지 필요성 등을 고려하더라도 폭력과 협박이 동반되는 강간죄는 명백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김혜정 영남대 교수도 “민법상의 동거의무에 성생활이 포함돼 있더라도 강제적인 성관계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검찰 편에 섰다.

하지만 피고인 A 씨 측은 “혼인의 관계는 특수한 관계다. 일반 강간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섰다. 특히 피고인측 참고인으로 나선 윤용규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부부 관계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아내 강간을 처벌하면 사이가 틀어진 부인이 이혼소송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이 엄하게 처벌되고 있는 추세에서 부부강간 역시 죄라는 인식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윤 교수가 지적한 부작용이 부부강간죄 도입이나 인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저항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강간죄는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 것이었는지로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데, 부부간 둘 만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강간의 경우 폭행과 협박 정도가 미약할 때 이를 판단하기 더욱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지적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아는 대법원도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재판부는 검사측에 “피해자 말만으로 수사가 이뤄질 때 부작용이 예상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검사 측은 “강간죄 자체가 범죄 입증이 어려워 증거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나 이 때문에 처벌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보호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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