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5회> 바람에맞서는 법(14)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먼저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들립니다. 그때 화면에서는 찻잔이 출렁이다가 뒤집어지지요. 카페의 아가씨들이 혼비백산합니다. 회의를 하던 중역들도 엄청 놀라고요… 순간 장면이 바뀌면서 1974년 산 치타가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갑니다.”

유민 그룹의 회의실에서는 상해로부터 방금 도착한 CF 제작물, 이름 하여 ‘프롤로그’ 편의 시사회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게 다야?”

“아닙니다, 회장님. 일단 그렇게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뒤에 느닷없이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가 1974년 산 치타를 추월하는 장면이 이어지는 데요…”

“이런 멍청한 것들, 처음부터 우리 치타가 추월을 당해?”

“그게… 광고효과를 노린 급반전입니다, 회장님.”

유민 회장이 임원들의 보고를 받던 중에 주먹을 쥔 채로 탁자를 힘껏 내리쳤던 것이다. 그러니 임원들이 식겁할 수밖에. 하지만 그중 하나가 급히 변명을 하는 통에 유민 회장은 가까스로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 때론 반전이 더 효과적이지. 그러니까 미녀가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경주에 웬 비키니 아가씨가 출현하느냐? 이게 프롤로그의 노림수입니다.”

유민 그룹에서 제작하는 이번 CF 광고는 거의 실시간으로 TV에 방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므로 시사회 역시 즉시 판단하고, 이견이 없다면 즉시 방영한다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랠리 경기는 시작됐나?”

“네, 15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총 365대의 머신들이 출발선을 떠났지만 아직은 속도경쟁을 벌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 좋은 세상이다. 15분 전에 시작된 경기가 벌써 촬영되어서 시사회장까지 도착했단 말이지? 그럼 TV 방영은 언제 되는 거야?”

“앞으로 45분 후에 방영 됩니다. 하루 24회 방영되고요…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현지 상황을 1시간 뒤에 중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프롤로그 편도 즉시 가부 결정을 해야겠군… 좋아, 이 정도면 됐어. 즉시 방송사로 전달해요. 그리고 방영된 뒤의 반응을 즉시 보고하도록.”

유민 그룹의 CF 시사회장은 이렇게 들끓고 있었지만, 항저우 현지에서 느끼는 5개국 관통 랠리 대회의 열기는 별로 시답지 않았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지에서 분위기를 달구어야 할 방송사 기자들이 대회를 외면한 결과였다.

현지 방송에서도 찻잔이 출렁이는 CF 들이 방영되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녹차의 최고급품으로 알려진 룽징차(龍井茶)를 판매하려는 업체광고일 뿐이었다. 항저우는 5개국 관통 랠리 대회의 개최지이기에 앞서 룽징차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출발선을 박차고 나온 권도일은 이번 대회를 바라보는 현지의 썰렁함을 다행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냐고? 그는 지상 10cm를 떠서 달리는 로열골드의 성능테스트를 비밀리에 마쳐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이번 대회의 험로 고비사막 어딘가에서 유호성을 불구로 만들려는 계략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호성을 모래 속에 파묻으려 하는데 현지 방송사의 이목이 집중된다면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었으므로.

결국 현지 반응에 제일 불만인 자는 유호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거에 대반전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유민 그룹의 CF 컨셉이 대반전으로 설정된 것도 어쩌면 유호성의 고집 때문이었다.

이 대회가 끝나면 세계적인 영웅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