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9회> 바람에 맞서는 법(28)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그럼… 불경스럽지만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회장님.”
박박진진은 우선 숨부터 크게 들이마셔야 했다. 대충 상황을 짐작해 보니 이미 자기 자신은 HY 훌 푸드 광고모델 최종 면접에 당당히 합격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벌어진 일은 우연히 떨어진 블라우스 단추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은?
‘그래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건 단추를 움켜쥔 채 엎드려 가수 노사연의 노랫말을 외는 신희영의 생각이었고,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삼수갑산엘 갈지언정…’
이건 그 위에 겹쳐 엎드린 박박진진의 심정이었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불경기로 인해 모델 계약 건수도 점점 부실해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당당히 합격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박박진진은 오로지 그 기쁨에 젖어있을 뿐, 제 자신이 만용을 부려가며 오버하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신희영은 이미 전화기를 내팽개친 지 오래였다. 긴박한 순간에 블라우스 단추가 떨어진 것이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운명을 계시하는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행운도 생기는 구나!
“이름이 박박진진이라고 했지요? 참 멋져요, 그 이름.”
“네, 하는 짓마다 박력이 넘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요? 어머, 이 박력!”
이름대로 박박진진은 그녀의 스커트를 박력 넘치게 허리 위로 걷어 붙였다. 지금 회장님의 명령이야말로 어명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더 이상 망설일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희영은 박박진진의 이 모든 행동이 자기의 아름다움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착각할 따름이었다. 전화통화 내용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치 못한 결과였다.
‘나에게 아직도 20대 남자를 매혹시키는 여성성이 남아 있었다니…’
그녀는 감격에 젖어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10분이 되든 1시간이 되든 온 몸을 박박진진의 뜻에 내맡길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아! 어쩌자고 이 야릇한 상황에서 ‘반야심경’이 떠오르는 것일까? 마음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몸도, 느낌도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러한 무심이 바로 ‘무아’라는 것일까?
‘무아’는 몸과 마음이 온전히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공중무색… 몸에 관련한 모든 것이 사라졌으므로 세상마저 사라진 것으로 보일 뿐…, 사실 그 순간에 신희영의 몸에서 사라진 것이라곤 맨 살 위에 걸쳐 입었던 삼각팬티 한 조각일 뿐이었지만 그녀의 마음과 몸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박박진진, 박진, 박! 박!”
신희영은 아예 머리를 소파 틈새에 들이민 채 교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박력 있는 상열지사를 원했기 때문일까? 그녀의 교성은 다른 여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오로지 박박진진을 외치던 그 목소리는 점차 노랗게 변해갔지만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찾으셨나요?”
공연히 분위기가 어색해서… 박박진진은 단추를 찾았냐고 물었다. 하지만 낙원을 헤매던 신희영이 그 질문을 제대로 해석할 리 없었다.
“찾았어요. 아! 꿈만 같아요.”
남편과 별거한 지 3년, 그녀는 이제야 진정한 배필을 찾았노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배위 자세로 꿇어앉아 무릎이 까지도록 용을 쓰던 박박진진은 의아할 따름이었다. 단추 하나를 찾은 것이 그토록 꿈만 같다니…
그러거나 말거나… 단추를 움켜쥔 신희영의 손바닥에는 흥건히 땀이 고이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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