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과거사 전쟁
한국 표지석 요구 훨씬 뛰어넘어 과거 동상 철거 등 부정적 인식 군부·보수파 반발 불구 개관 한중 역사인식 공동전선 의지
[베이징=박영서 특파원]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역에 자리잡은 ‘안중근 기념관’ 개설은 가까워진 한ㆍ중 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앞으로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한ㆍ중의 대일(對日) 압박 공조가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中의 통 큰 화답, 韓과 대일 공동전선 의지=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안 의사 기념관을 세운 것은 큰 변화다.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제 침략으로 커다란 피해를 봤지만 그동안 안 의사 기념사업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중국 내 조선족들의 민족주의 강화 가능성, 일본과의 관계, 외국인 기념비를 세우는 데 대한 국내의 반발 등을 꼽을 수 있다.
20일 중국의 한 역사학자는 “이민족의 요인저격이란 사건은 시짱(西藏ㆍ티베트), 신장(新疆)위구르의 치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항일전쟁에서 희생된 중국인을 제치고 외국인의 기념비를 설치한다는 것에 대한 군부와 보수파의 반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일본의 아베 정권이 출범한 뒤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열도) 영토 문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역사인식 문제로 인해 중ㆍ일 갈등이 크게 증폭되자 기념 표지석 설치를 넘어 기념관 건립에까지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중국 측의 일본에 대한 경고 및 부쩍 가까워진 한ㆍ중 관계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중국이 대일문제를 놓고 한국과 공동전선 의지를 명확히 했다”면서 “향후 일본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여러 곡절 거친 中의 태도=안 의사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 입장은 그동안 여러 곡절을 거쳐 왔다.
1909년 10월 26일 안 의사의 격살(擊殺)의거는 당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해야 했던 중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인들은 안 의사의 의거를 찬양했고 중국 각지에선 의거를 소재로 한 연극이 잇따라 상연됐다.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은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자 제사를 통해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빛나리”라고 거사를 칭송했다.
그런가하면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중ㆍ한이 함께 벌인 항일투쟁은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면서부터 시작됐다”며 안 의사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진다. 북한이 지난 1979년에 제작한 2부작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영화가 1980년대 중국에서 방영되어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정도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과 새로운 중ㆍ일 관계를 구축하려했던 후진타오(胡錦濤) 정권 시절에는 특히 예민한 문제였다.
지난 2006년 1월 발생한 안중근 동상 강제철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안 의사 서거 96주년을 맞아 하얼빈 중심가 중앙다졔(中央大街)광장에 세워졌던 안 의사 동상이 설치 열흘 만에 강제철거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이었던 지난 2009년 10월에도 중국 정부는 각종 기념행사들을 잇달아 불허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