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우리 나라는 과연 다문화 사회일까.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동포마을, 마포구 연남동 화교촌, 이태원 등 외국인 밀집 지역을 찾아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22번지. 중국어 간판으로 손님을 끌고 있는 휴대전화 대리점, 미용실, 각종 향내를 풍겨오는 먹자골목 등 초입부터 이국적 풍경이 펼쳐졌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공단이 없어지면서 중국 동포로 채워지며 동포 마을이 됐다. 구로구에 따르면 현재 구로구에는 4만3000여명의 외국인들이 구로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85%인 3만7000명이 중국동포다. 이중 상당수가 122번지에서 터를 잡고 있다.
보수 작업이 한창인 식당에서 만난 김길려(50ㆍ여ㆍ가명ㆍ식당주) 씨. 지난 1998년도 중국 용강에서 건너와 4년전 처음으로 가계를 차렸다. 고향에 있던 딸까지 한국에 불러들여 대학에 보냈다는 김 씨에겐 한국은 기회의 땅이자 끝내 동포를 안아준 땅이다.
한국에 완전히 뿌리내린 그이지만 중국동포를 바라보는 한국인에 대한 섭섭함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를 동포라고 받아줄 수 있는 곳은 한국 밖에 없어요. 한국사람들에게 고마운 점이 많아요.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동포들을 보는 시선들이 다른 것도 사실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중국동포들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문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화교. 이들에게 있어서도 현실속 ‘다문화 대한민국’은 ‘아직 먼 이야기’다. 이들은 다문화에 대해서 중국동포보다 조금더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화교 마을에는 1100여명의 화교가 살고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중국인들이 마을을 이뤄 살고 있는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들었으며, 간간히 보이는 한자어로 된 중국집 간판도 여느 동네와 다름 없었다. 이따금 거리의 노인들로부터 가끔식 터져나오는 중국어가 이곳이 화교마을임을 가늠케 했다. 나무 그늘 앞에서 볕을 피하고 있는 노인 중에 왕문영 화교협회 부회장이 있었다. 그는 다문화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할 말이 많았다.
“우리가 다문화 1세대에요. 백년전부터 한국에서 뿌리를 내렸어요. 우리는 중국인으로, 대만인으로, 그리고 한국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무만 다했지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미련이 없다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말일까요.”
주민등록증 없이, 외국인등록증으로 수십년을 한국에서 버티고 있는 화교들. 왕 씨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로서 내야할 각종 세금은 모두 내고 있다.
화교들은 2000년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업지역에 있는 토지를 60평이상 구입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무역업, 제조업, 여행업 등이 금지된다. 다문화 1세대로서 한국사회에 섞이기 위해 노력했던 화교들 입장에선 충분히 억울한 일이다. 1948년까지 8만명에 이르렀던 화교는 점점 빠져나가 현재 2만1000여명만 남아 있는 상태다.
조선족, 화교들이 바라보는 현실 속 ‘다문화 대한민국’이 ’아직‘으로 정리된다면, 다문화의 완전체라고 불리는 이태원은 어떨까.
이태원에서도 만난 사람들 역시, 아직 한국은 ’다문화 사회‘를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되고,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부터 고쳐져야 하며, ’조금만 더‘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만난 오마르(42ㆍ케밥집 운영)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외국 문화를 많이 접한 한국인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면서 “이전에 비해 한국인들이 외국인, 외국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친절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에 대해 조금만 더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이태원 노상에서 장사를 하는 이정혁(28ㆍ가명) 씨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나 조차도 피부색 등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다”며, “앞으로 한국인들이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