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깔리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한껏 멋부린 청춘들 만남의 광장
인디음악·거리예술·클럽·패션까지… 주류·비주류 아우르는 대중문화의 核
거대상권 놓치지않은 자본의 진격 가난한 예술인 도리없이 울타리 밖으로 문화적 다양성 유지 앞으로의 과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계절과 날씨, 주말과 주중을 가리지 않고 ‘핫(Hot)’한 장소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빠져나오려는 자들과 들어가려는 자들 사이에 늘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지곤 하는데 승리는 대개 전자의 몫이다. 출구 앞 KFC 홍익대점은 지정학적인 이유로 본의 아니게 만남의 광장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매일 오후 거리에 어스름이 깔릴 때쯤이면 이 좁다란 만남의 광장은 수많은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벼 인(人)의 장벽을 이룬다. 한껏 멋을 낸 수많은 젊은이가 ‘닭집’ 앞에 닭장 속 닭처럼 모여들어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이다.
매장 입구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최승연(22ㆍ여) 씨에게 기자가 오늘 저녁 메뉴는 치킨이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최 씨의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의 행간에선 “오늘 저녁 메뉴는 절대 치킨이 아니다”란 의미가 자연스럽게 읽혔다. 기다리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 중 일부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 탄산음료나 아이스커피 등을 주문해 매장 위층에 마련된 홀로 향했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토해냈다. 겨우 출구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골목 속으로 하나둘씩 스며들었다.
홍대 앞이라는 지명은 대한민국 땅에서 단순한 지명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홍대 앞은 인디음악, 길거리 예술, 클럽, 독특한 패션 등 한국의 다양한 하위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중심축이다. 이 같은 홍대 앞 문화는 홍대를 대표하는 과인 미대 학생들의 작업실 문화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홍대 앞에서 대학시절부터 30년 동안 살아온 터줏대감 장성환 월간지 ‘스트리트H’ 발행인은 “미대생들이 홍대 인근의 반지하 방 등을 작업실로 빌려 그림을 그리고 토론하며 술을 마시던 일상이 주변의 카페와 주점 등으로 이어졌다”며 “미대생들의 작업실이자 거주지였던 ‘홍대 앞’엔 이들의 예술과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일종의 지역 문화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개성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대학가라는 특성상 저렴한 물가도 젊은이들을 불러들인 일등공신이다. 대학생 김연주(21ㆍ여) 씨는 “강남이나 명동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인근 대학에 재학 중인 친구들이 많아 홍대 앞을 자주 찾는다”며 “홍대 앞만의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고 했다.
홍대 앞 문화의 부상은 역으로 기존의 개성적인 문화를 바깥으로 내모는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홍대 앞이 거대한 상권으로 떠오르자 자본이 골목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본은 또 다른 자본을 불러들여 홍대 앞의 매장 임대료와 월세 상승을 부추겼다. 솟아오른 임대료 등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많은 상인들이 가게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내줬다. 월세에 짓눌린 젊고 가난한 예술인들은 대거 짐을 싸서 문래동과 광흥창 등 주변부로 밀려났다. 자본은 그 빈자리들을 꼼꼼하게 메웠다. 2000년대 초반까지 ‘홍대 앞 놀이터 골목 일대’를 일컬었던 홍대 앞의 문화적 수비 범위와 상권은 동교동ㆍ합정동ㆍ상수동ㆍ연남동 일대로 확장됐다.
상업화로 인해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홍대 앞은 여전히 젊음의 거리다. ‘주차장 골목’은 다른 곳에선 쉽게 보기 힘든 의류와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명소다. 가격도 적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몇 만원의 수준으로 저렴해 부담스럽지 않다. ‘무제한’이란 간판을 내건 주점과 음식점을 마주치는 일도 이곳에선 어렵지 않다.
놀이터에선 매일 밤 이름 모를 뮤지션들이 내일의 스타를 꿈꾸며 열띤 공연을 펼친다. 대형 무대와 화려한 조명은 없지만 진입장벽도 없다. 장르도 포크부터 록ㆍ힙합까지 다양하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기타를 메고 다녀도, 톡톡 튀는 헤어스타일에 코를 뚫어도 누구하나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공간이 홍대 앞이다. 또한 홍대 앞은 클럽이나 공연장 등 문화적 인프라가 여전히 다양하다는 점에서 인근의 신촌이나 이대와는 궤를 달리하는 공간이다. 최근엔 이러한 독특한 문화적 토양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많은 인디 뮤지션이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며 식상해진 대중음악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각광을 받고 있다. 매일 수많은 인디 뮤지션이 무대에 오르는 클럽은 대중음악의 새로운 미래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기도 하다.
2013년 현재 홍대 앞은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주요 문화 현상을 단시간 내에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용광로 같은 장소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언제까지 홍대 앞만의 독특한 문화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 발행인은 “ ‘홍대 앞’의 가장 큰 특징은 문화적 다양성인데 이 같은 다양성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상업 자본을 유입시켰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지금의 ‘홍대 앞’을 만든 것은 상업성과 거리가 먼 변방 문화라는 점에서 염려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