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 감추어진 승부 (56)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1974년 치타의 인덕션 포드에 정체불명의 가루가 뿌려진 직후 권도일은 가까스로 그 옆을 스쳐서 비켜갈 수 있었다. 비록 바퀴 구동으로 운전방법을 전환했다 하더라도 시속 1,200km로 날아오던 관성이 작용되었던 것이다.
‘안타깝군, 내가 먼저 죽였어야 하는 건데…’
권도일은 쯧쯧, 혀를 찼다. 유호성이 불쌍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굳이 불쌍한 사람을 꼽으라면 조수석에 앉아있던 코-드라이버 현성애라고나 할까? 그는 오로지… 가문의 원수를 제 손으로 직접 처단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답답하군. 오버.”
재벌2세는 무선송신을 통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권도일은 수다를 떨고 있을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백색 가루로 테러를 당한 1974년 산 치타는 모래구덩이에 보네트를 틀어박은 채 노킹현상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엔진의 이상폭발로 인해 생겨나는 소음이 권도일의 귀에까지 확연히 들려오고 있었다.
“1974년 치타의 운전석이 잠시 보였습니다. 핸들이 풀 록 상태인 걸 보니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오버.”
“풀 록? 죽었나?”
“잠시 머신을 되돌려 확인하겠습니다. 오버.”
풀 록(full lock) 이란, 핸들이 어느 한 쪽 방향으로 최대한 돌아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랠리 경주를 벌이는 드라이버가 핸들을 완전히 풀 록 시켜놓을 리가 있나? 급경사 지면에 머신을 세워놓아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풀 록으로 정지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권도일은 급히 로열 골드의 머리를 뒤로 돌렸다. 잠깐 사이였는데도 1974년 산 치타와는 200여 미터나 멀어져 있었다.
“노우! 유호성 선수의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요르단 선수의 블랙 이글스를 뒤쫓도록. 오버.”
“명령 접수함. 오버.”
재벌2세는 다급하게 명령했고, 권도일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만약 블랙 이글스의 테러로 인해 유호성이 사망했다면… 더 이상 랠리 경기에 매달릴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리 단순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1974년 산 치타가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처박은 채 헛바퀴를 굴리는 동안, 어느새 따라붙었는지 북서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출신의 선수가 모는 머신 한 대가 다가와 있었다.
“오우, 마이 갓!”
속도를 기록하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리타니아의 병사 두 명이 머신을 세우더니 황급히 모래벌판으로 내려섰다. 아마도 사고로 인해 드라이버가 위급해졌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랠리 경기 도중에 다반사로 생겨나는 사고.
권도일도 잠시 머신을 세워놓고 있었다. 전방 200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모리타니아의 병사들은 구호작업을 벌이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멀리 달아난 줄 알았던 요르단 국적의 블랙 이글스가 그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해 가고 있었다. “갓 뗌!”
200미터 전방에서도 능히 알아들을 수 있는 고함소리. 자기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블랙 이글스를 향해 퍼붓는 모리타니아 병사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고함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두 명의 모리타니아 병사들마저 휘청휘청 거리다가 모래밭 위로 고꾸라지고야 말았다. 블랙 이글스가 직접 타격하지는 않았으니… 그들에게도 정체불명의 백색 가루를 뿌렸을 것이라고 짐작 되었다.
그때, 이건 또 뭐지? 하늘 저 멀리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호용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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