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5> 감추어진 승부 (79)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아들이 인근 병원에 입원해 있든 말든, 몸이 아픈데 문병이고 나발이고 따질 겨를이 있나? 신희영은 박박진진을 다그쳐 ‘라사’ 중심부에 위치한 썬라이즈 호텔로 들어섰다. 야크 뿔로 장식된 입구와 야크가죽이 걸린 벽을 대하면서부터 이국의 정감이 성큼 몰려들긴 했지만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빨리 방부터 잡아요.”

“하, 참! 회장님은 우아하게 저쪽 라운지에 앉아계세요. 제가 알아서 체크인 하고, 편하게 모실 겁니다.”

신희영은 박박진진의 팔뚝에 매달려 애원했고, 박박진진은 오히려 점잖은 신사처럼 느긋하게 행동했다. 왜냐고? 신희영은 점점 심해지는 고소증세로 인해 다리가 후들거렸기 때문에 그의 팔뚝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박박진진은 색골 회장님의 ‘침대증후군’이 도진 것으로만 여긴 까닭이었다.

침대증후군이란? 이를테면 전방 20미터 이내에 침대가 있을만한 곳에선 무작정 박박진진의 팔뚝에 매달리던 신희영의 증상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녀가 팔뚝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어떤 경우라도 침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박박진진은 이게 바로 ‘샛서방’의 비애려니… 하고 여길 뿐이었다.

“빨리빨리… 더 이상 못 참겠어.”

“하이고, 알았습니다.”

육보시도 터프하게 베풀어야 해
육보시도 터프하게 베풀어야 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룸 키는 서둘러 받아낼 수 있었다. 신희영은 하마터면 객실 복도에 토할 뻔 했다며 안도했지만, 박박진진은 비행의 여독도 풀지 못하고 ‘육보시’를 베풀어야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원래 인간의 신체는 높은 곳에 이르게 되면 본능적으로 호흡과 맥박을 빠르게 하여 부족한 산소량을 채울 수 있도록 빚어져 태어났다. 혈액의 산소운반 능력을 조물주가 알아서 부여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천천히 걸으며 고지에 적응하다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인데, 자동차를 타고 낮은 곳에서 순식간에 높은 곳으로 이동하다보니 고산증세를 앓게 되는 것이다. 피로감, 불면증, 식욕부진, 두통 등은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었지만… 신희영은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룸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전면 유리창을 통해 라사 중심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저 멀리 뿌연 스모그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조캉 사원’인 모양이었다. 조캉 사원은 티벳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사원으로 존중하는 곳이며 순례자들의 마지막 순례목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조캉 사원으로 통하는 길목이라서 인가? 길을 따라 많은 승려들이 줄지어 걷고 있는 모습, 혹은 길가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경전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잠시나마 박박진진의 마음이 경건해지려는 참이었는데…

“드디어 침대로 왔어! 드디어!”

신희영 회장이 거의 달리기를 하는 수준으로 침대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박박진진은 마음을 바꿔먹었다, 어떻게? 경건해지려는 마음을 정염에 찬 마음가짐으로! 어째서? 그야 물론 ‘갑’을 모시는 ‘을’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샤워도 하지 않고 본론으로 가자고? 이 경건한 동네에서?’

박박진진은 속으로… 오로지 마음속으로 이렇게 항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박박진진 역시 약간의 고소증세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왠지 두통이 나는 것 같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는 그 원인이 고소증세 때문이란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어쩌랴? ‘갑’이 저토록 맹렬히 원하는 것을… 박박진진은 구두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올랐다. 신희영의 마음을 짐작컨대, 지금은 왠지 터프하게 다가서야 할 때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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