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1> 감추어진 승부 (75)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팀장!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분위기예요.”
“그렇지? 나도 그렇다고 여겨지네.”
“저 두 명의 동양 여자를 병원으로 모셔야할 것 같습니다. 제 견해로는 집단적인 히스테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집단적인 증상이라고?”
“그런 것 같아요. 좀 전에 머신 안에서 섹스 하던 남녀, 그 옆 모래밭에서 뒹굴던 게이들, 그리고 저 동양 여자 둘… 모두 같은 증상 아닐까요?”
“음, 좋아. 모두들 병원으로 모셔가세. 그런데 원인이 뭘까?”
“원인은 모르겠지만 반경 1km 내에서 벌어진 국지적인 현상으로 보아서… 아마 전염될 위험성은 없는 걸로 보입니다.”
“혹시 외계인과 교신하는 무리들이거나, 아니면… 지구의 종말을 믿는 사이비 종교집단은 아닐까?”
“어쨌든 대형 환자 이송용 헬리콥터를 추가 요청하겠습니다.”
“오케이. 자네는 헬기를 긴급 요청하게. 나는 잠시 내려서 저 아가씨들 정신 상태를 점검해야겠어.”
구호요원들은 자못 심각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목숨을 저당 잡히고 시간을 다투며 머신을 모는 랠리 구간 아니던가? 차량들이 늘어선 것을 보니 분명 랠리 팀의 일원인 것 같은데… 어째서 저토록 한가한 짓들을 하고 있을까?
랠리란 지구력을 시험하는 경기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시간을 건 싸움이다. 0.1초를 아끼기 위해서 드라이버들은 생리현상도 참아내야만 할 것이다. 소변 따위는 바지 틈으로 대롱을 이어 흘려내면 될 것이다. 굳이 소변을 보기 위해 차량을 멈추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물며 대변도 응급으로 처치하는 판인데…
헬리콥터에서 내린 구호 팀장은 잠시 모래먼지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서있었을까? 무거운 모래가 내려앉고, 미세먼지마저 바람에 날려가고 나서야 확실히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헬로우? 와츠 헤픈?”
먼저 무슨 일이 있냐고 운을 뗀 사람은 클래식 카 동호회 회장인 움라우트 패튼이었다. 구호 팀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집단적 히스테리에 감염된 환자 쪽에서 오히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격이었다. 그제야 확인해보니 자동차는 수없이 늘어서 있건만, 눈앞에는 비키니를 입은 동양 여자와 카메라를 든 동양 여자,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듯한 서양 남자… 이렇게 세 명이 서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지금 뭐 하는 중입니까?”
아마도 구호 팀장은 이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러자 움라우트 패튼 회장은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지금 저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중이오. 일생일대 기억에 남을 만한 프로포즈 중입니다. 얼마나 황홀한 순간인 줄 아십니까?”
감격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때, 어디에 숨어있었을까? 조선 족 통역원이 빠른 걸음으로 강유리에게 다가서더니 움라우트 패튼 회장의 말을 즉석에서 통역해 주는 것이 아닌가.
“정말예요? 정말로 패튼 회장이 그렇게 말했어요?”
강유리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 상황이 훌륭한 이벤트로 여겨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황금으로 된 메모는 프로포즈 선물이란 말인가?
그러자 웬걸, 패튼 회장의 말을 듣고 있던 구호 팀장이 급기야 브라보!를 외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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