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아직 한참 어리디 어린 나이지만, 연기력만큼은 성인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통해 ‘톱’주연으로 발돋움한 여진구가 그렇다.
여진구는 '화이'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한 연기를 과시했다. 그를 인기 반열에 올려놓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보고싶다'에서는 볼 수 없던 카리스마와 남성성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압도했다.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폭발적인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카메라가 꺼진 뒤 모습은 영락없는 소년이다. 흥행을 칭찬하자 쑥스러운 듯 "요즘 잘되고 있다고 주변에서 말을 듣곤 한다"며 웃는 그의 모습은 여느 또래와 같았다.
'화이'의 장준환 감독은 앞서 본지와 인터뷰에서 여진구의 연기력과 가능성을 칭찬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지만 정작 당사자인 여진구는 침착했다.
"감독님이 저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하신 건 아니에요. 저도 오디션을 치렀고, 첫 오디션은 아마 감독님이 마음에 드시지 않으셨을 거예요. '보고싶다'를 끝내고 난 뒤 감독님께 다시 연락이 왔죠. 대본을 다시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 합격했어요."
같은 또래 아역배우들에 비해 월등히 앞선 인기와 연기력을 소유하고 있는 여진구. 질투의 시선도 많을 법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다행인 것 같다. 매사 긍정적이다"며 활짝 웃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충무로에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여진구는 아직도 당시 촬영장을 잊지 못한 듯했다. "다들 무섭게 생기셨지만, 전혀 그렇지 않더라"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전혀 무서운 분들이 아니었어요. 사실 정말 범죄자처럼 생기셔서 처음엔 정말 무서웠거든요. '벌써부터 역할에 몰입하고 계시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제 생각보다 정말 다들 너무 자상하시고 착하셨어요. 마치 벌레도 잘 못 죽일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요."
그렇다면 여진구가 가장 기댈 수 있는 '아빠'는 누구였을까.
"아시잖아요.(웃음) 김윤석 선배님이 너무 편하게 해주셨죠. 사실 선배님이 안 계셨다면 해내지 못했을 장면들이 많아요. 정말 몰입력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액션'이라는 감독님의 말을 듣는 순간 돌변하는 선배님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영화에서 여진구가 보여주는 연기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아빠들의 정체를 알고 난 뒤 겪는 슬픔, 분노, 그리고 첫사랑을 시작했을 때의 풋풋함부터 액션 연기까지 완벽히 소화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물으니 "친엄마에게 손수건을 쥐어주는 장면"이란다.
"액션이나 운전연기도 힘들었지만 친엄마에게 손수건을 쥐어주면서 '엄마'라고 부르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어요. 저에게 '엄마'는 정말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거든요. 그런데 화이는 절대 그렇지 않잖아요. 17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를 부르는 장면인만큼 어색함이 묻어나야 되는데, 그게 잘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여진구가 생각하는 화이는 어떤 인물일까. 선과 악, 오묘한 경계에 있는 복합적인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했다.
"사실 정리하기가 겁나요. 한 마디로 화이는 선과 악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무섭죠. 선과 악의 경계선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그런데 또 어떤 분들은 악으로써 악을 물리치고 선이 된다고 해석하시기도 하더라고요."
괴물을 두려워하는 화이처럼, 여진구의 두려움의 대상은 무엇일까.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벌을 무서워한다"며 의외의 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거미하고 벌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요. 어렸을 때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얼굴에 거미가 앉은 거예요. 심지어 눈도 마주쳤어요.(웃음) 그리고 벌은 제가 노래를 듣고 있는데 어디서 '앵~'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벌이 바로 제 옆에 있는 거예요. 아 정말 간담 떨렸어요.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걸요? 하하."
여진구는 현재 tvN 시트콤 '감자별'에 출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과는 사뭇 다른 시트콤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돼 있을까.
"일단 감정 연기를 하는 데는 시트콤이 더 완만한 것 같아요. 제가 시트콤에서 분한 캐릭터가 진지하지 않거든요. 재밌는 아이라 편해요. '화이'도 뭐 사실 감정 연기만 복잡했을 뿐이지 현장은 굉장히 즐거웠어요."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여진구는 바쁜 촬영 일정 때문에 학업에 충실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학교에 많이 나가진 못했어요. 그래도 1학기 출석율은 좋아요.(웃음) 친구들하고도 굉장히 잘 지내고 있고요. 중간고사 잘 봤냐고요? 하하. 비밀입니다."
지금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여행이다. 아무래도 연기와 학업 관련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다. 그는 "혼자서도 여행은 꼭 가보고 싶다"며 환히 웃었다.
"부모님은 저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에요. 남들이 안했던 악역을 도맡아 주셨고요. 입시준비요? 대학은 정말 가고 싶죠. 연극영화과를 가도 신선하겠지만, 뭔가 연기 이 쪽보다도 심리학과나 다른 일반과가 끌리더라고요. 저의 로망을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보편적인 선택을 해야 할 지 고민이예요."
어린 나이에 비해 달달한 멜로연기도 소화했고, 선과 악의 오묘한 경계점에 있는 '화이' 캐릭터도 농 익은 연기로 표현했다. 그런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캐릭터는 "누가 봐도 나쁜" 악역이다.
"정말 나쁜 사람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추격자'의 하정우 선배님 같은 캐릭터도 좋고요. '다크 나이트'의 조커 같은 느낌이 나는 캐릭터요. 멜로는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정말 연기하기 힘들더라고요. 하하."
사진 임한별 기자 hanbuil@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