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 감추어진 승부 (68)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아이고, 아악! 갓 뗌. 아악, 솃, 악, 뗌, 뗌, 뗌…”
또 다른 나시 족 처녀와 강준호가 동시에 질러대는 욕과 비명소리는 동파만신원 주위에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었다. 도망질치는 3류 감독이 들어도 짜증나는 소리였다. 도대체 저쪽 커플은 얼마나 정력이 출중하기에… 하고 생각하다보니 서로가 작업을 시작한 지 겨우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3류 감독은… 어렵사리 나시 족 아가씨의 옷을 벗겨놓고 불과 몇 분 만에 도망질치게 된 신세를 한탄했다. 강준호처럼 용맹정진 해서 동파만신원이 흔들리도록 메아리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어찌 없었을까? 그에게 위기사실을 알려 함께 도망가고 싶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그가 청년들에게 잡혀 새장가를 들든 말든 참견할 계제가 못 되었던 것이다.
알몸인 채로… 3류 감독은 벗어놓은 바지를 움켜쥔 채 하염없이 어둠속을 달렸다. 바지 끝단을 움켜쥐었던가? 어깨 뒤로 걸쳐 멘 바지가 마치 망토처럼 펄럭였다. 그래도 멀리 도망칠 궁리는 했던지 구두라도 꿰어 신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동파만신원 담장이 아득하게 보일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는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내몰았다.
‘결혼하자고 속인 적 없다며 발뺌할 걸 그랬나? 이왕 옷까지 벗겨놓았는데 작업이나 끝마치고 도망치기라도 할 걸 그랬나?’
때늦은 후회를 연거푸 한들 무엇 하랴. 허어! 그는 쓴 웃음을 토해내며 어두운 숲속에서 바지를 꿰어 입었다. 팬티와 양말은 어디에 흘렸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알몸 위에 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지퍼를 잠글 때에는 행여 지겟작대기가 틈새에 물릴지도 몰라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아니야, 잘했어. 거짓말 한 흔적은 어디에고 남는 법이야. 공연히 재미 좀 보려다가 강제로 장가들어 나시 족 장인, 장모 눈치 보며 살 수야 있나?’
그는 이렇게 제 마음을 다독이며 숲길에 주저앉았다. 종일 기다려서라도 어쩔 수 없이 강준호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중국 돈이며 호텔 키, 심지어 여권마저도 강준호가 모두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럼 이 대목에서 출장 떠났던 자린고비가 집에 당도해서 제일 먼저 밀가루 단지를 열어보며 물었던 말을 해석해보기로 한다. 그 해석대로라면, 거짓으로 꾸민 흔적은 당연히 드러나게 되어 있었으니 3류 감독에겐 위안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吾鬚若是卷曲乎? 吾口不橫而竪乎? 吾鼻在吾口中乎?’
‘내 수염이 어찌하여 이처럼 고불고불 하지? 내 입이 어째서 옆으로 째지지 않고 위아래로 째져있을까? 그리고 내 코는 어쩐 일로 내 입 가운데에 들어있을까?’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전해지기로… 자린고비는 이렇게 물은 뒤에 몽둥이를 꺼내들고 아내와 첩을 두드려 팼다고 한다. 지금 세상에 견주어본다면 천하에 몹쓸 놈이었다. 제 마누라와 첩이 먹는 게 아까워 두드려 패기까지 하다니. 하지만 눈치는 제법 빠른데다가 글줄이나 썼던 인물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자린고비는 ‘어떡하면 부자가 될 수 있소?’ 하고 묻는 이에게 낭떠러지에 매달린 소나무 가지를 붙잡고 매달리도록 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재물 지키기를 그 손이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것 같이 하면 충분하다네.”
각설하고, 3류 감독은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강준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강준호는 흐뭇한 표정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동파만신원 정문을 통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제야 달이 떴는가? 달빛을 받아 허옇게 드러난 길을 따라 그가 휘적휘적 걷는 모습이 개선장군과 다를 바 없었다.
“감독님, 어쩐 일로 여기에 서계시오? 그리고 이건… 어째서 흘리고 오셨소? 너무 감격해서 옷가지 챙길 여유도 없었나봅니다 그려. 허허허!”
그는 감독이 흘리고 온 팬티와 양말을 건네주며 껄껄 웃었다. 그리곤 휘적휘적 앞서 걷기 시작했는데… 맨발에 구두 신고 알 바지를 입은 채 따라 걷는 감독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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