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이 난 뒤 3년이 지나 제기된 과거사 손해배상 소송이 항소심에서 잇따라 뒤집히고 있다. 이는 올해 5월 있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소멸시효 관련 판결에 따른 변화지만 과거사 희생자들을 위한 입법적 노력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27부(부장 이재영)는 6.25 전쟁 당시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이모 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과거사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은 지 3년이 지난 시점에 소송이 제기됐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같은 법원 민사2부(부장 조해현) 역시 이달 초 보도연맹 희생자의 유족 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같은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판결이 뒤집히기 전 1심 재판부들은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신의성실원칙에 반해 부당하다”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입장 변화는 지난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온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진실규명결정 이후 3년이 지나 제기된 소송은 국가가 소멸 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전국의 재판부들이 일괄적으로 입장을 수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가가 불법행위를 저질러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분명한 만큼 국가가 적극적으로 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과거사 손배소 판결에서 연달아 피해자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려 비판을 샀던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당시 부장 장진훈)는 한 판결문의 말미 남긴 여론(餘論)을 통해 “(과거사 사건들은) 피해 규모가 크고 사건 발생 시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점을 고려해 피해배상을 포함한 별도의 입법을 하는 방법으로 적절한 조치를 통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 바 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들쑥날쑥한 판결과 배상액으로 사회적 혼란을 키우기보다 피해자들을 일괄 구제할 수 있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