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0회> 감추어진 승부 84

지금은 멋진 외래어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지만, 1970년대 말, 어쩌면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숙박업소에는 군인처럼 명쾌한 계급이 붙어 있었다. 호텔 밑에 모텔, 모텔 밑에 여관, 여관 밑에 여인숙… ‘인숙이네 집’으로 별칭 되던 여인숙은 가장 싸구려 숙박업소임에 틀림없었는데, 방 하나를 둘로 쪼개어 두 개의 방으로 개조한 경우가 흔하디 흔했다.

가뜩이나 형편없이 꾸며진 방을 둘로 나누는 데에 특별한 마감재를 사용할 필요가 있나. 대충 베니어판으로 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막아 놓으면 그뿐이었다. 하룻밤 방을 빌려주는데 3천원을 받았다면 베니어판으로 막아놓은 날부터는 어김없이 방 두 개의 값, 6천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천정에 걸려있는 조명이었다. 간혹 형광등을 설치한 인숙이네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 알전구를 달아놓았을 뿐인데… 방은 둘로 갈랐으나 전등을 추가로 설치하자니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착안해낸 방법이?

형광등이나 알전구 정 중앙을 가로질러 베니어판으로 칸막이를 하고, 전구가 매달려 있는 부분에 친절하게도 어른 머리통만한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전설과 같은 추억이 이야기로 전해질 뿐이다.

그러다 보니 거의 매일 밤마다 ‘대타협’을 이뤄야 하는 사건이 벌어지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숙박업소엔 유독 금실 좋은 남녀가 찾아들게 마련이지 않은가? 방에 남자, 여자 둘이서만 호젓하게 있다 보면… 가뜩이나 금실이 좋은 판에 무슨 짓인들 못해?

그래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 알전구를 환하게 켜놓고는 도저히 옷을 벗을 수 없노라고 엄포를 놓는 아가씨들이 대부분이었단 말이다. 좌우지간 어르고 달래서 남녀 간에 합의를 보긴 했으나 옆방에선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 당장 생사를 넘나드는 문제가 도출되게 마련이었다.

“여보세요, 그만 불 좀 끕시다.”

화끈 달아오른 방에서 먼저 이런 식으로 제의하면, 옆방에선 당황하기도 하고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손만 잡고 자겠다는 남자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따라 들어선 아가씨는 일순 당황하겠지만, 상대 남자는 으흐흐! 능글맞게 속으로 웃곤 했다는 말이다. 이제나저제나 아가씨를 넘어뜨릴 구실만 찾고 있던 중에 옆방에서 불을 끄자니 그 놈은 얼마나 좋았을까.

개명천지가 되어버린 2013년 어느 날, 라사 중심부에 위치한 썬라이즈 호텔 맨 꼭대기 층의 디럭스 룸에서도 그러나… 옛날과 엇비슷한 상황이 재현되는 중이었다.

“정말 못 참겠어요? 진짜로?”

“그래, 도저히 못 참겠어. 차라리 날 죽여 줘.”

“좋아요. 참지 마세요. 그 대신 소리 좀 작작 지르세요. 창피하잖아요.”

신희영이 고산증세로 인한 구토를 참지 못하고 어리광을 부리면, 박박진진은 오히려 으름장을 놓곤 했는데… 호텔을 지을 때 마감재를 충분히 쓰지 않아서 벽간 소음이 심한 터라 고양이처럼 아르릉대는 신희영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벽을 타고 옆방으로 전해지는 중이었다.

“거 봐요 호성 씨. 옆방에서도 한다잖아요. 옆방에서 할 때 우리도 같이 해요.”

“어쩌자고 같이해?”

“그래야 옆방 아줌마가 우리 짓을 눈치채지 못할 거 아닌가? 제가 지르는 교성소리 때문에 남의 소리가 들리기나 하겠어요?”

“하긴, 모든 소리가 새나가는 판이니… 그 방법이 제일 현명할 수도 있어.”

“그렇지요? 그럼 오빠도 얼른 포대자루 벗어버려라. 나도 맘껏 소리 좀 질러 보게.”

호성 씨에서 오빠로, 존댓말에서 대충 반말로 바뀌는 걸 보니 현성애의 몸은 어느 새 달구어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불과 한나절 전만 해도 목숨을 건 채 사막을 달리다가, 갑자기 잠이 들고, 치누크 헬기에 실리고, 병상에 누웠다가 티벳 꼬마들에게 쫓기기까지… 얼마나 고단했던가. 그런 뒤에 현성애의 알몸을 보니 유호성도 슬슬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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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