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9>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0)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신 압록강대교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수많은 인파와 취재진이 들끓고 있었다. 중계차에 올라앉아 있는 취재기자는 물론, 철탑 위에 기어 올라가 카메라를 대놓고 있는 취재팀, 혹은 이삿짐을 나르는 사다리차에 TV를 설치해놓은 취재진을 위시해서 곧 시작하게 될 중계방송을 리허설하는 앵커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보도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정작 놀랄만한 일은 그 보도진들 사이에 ‘조선중앙 TV’ 기자들과 ‘만수대 TV’ 기자들의 모습도 보이더라는 사실이었다. 조선중앙 TV는 매일 방송하는 채널이라 그렇다 쳐도, 평상시엔 주말에만 방송을 하던 만수대 TV 기자들까지 보도전쟁에 끼어들었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좋구만. 이번 장사는 대단히 성공적이야.”
테이블 앞에 수양딸 예원희의 사진을 주르륵 펼쳐놓고 있던 도형철은 그제야 자기의 위상이 살아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되고 있는 랠리 경기 촬영장 모습을 보며 가끔씩 감격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내곤 했다.
북한 당국에서 이토록 자본주의 색채가 농후한 스포츠를 생중계하기는 더더욱 이례적이었다. 70억 세계인이 모두 즐긴다는 월드컵 축구경기도 선별적으로 제한해서 일부분만 방영해주곤 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 자동차 경주는 시작하기 전부터 대놓고 카메라를 들이대었다는 사실에 지극히 놀랄 뿐이었다.
“아바지, 텔레비전 보고 계세요?”
“오, 그래. 내 딸 원희 아니네?”
“그래요, 아바지. 이제 잠시잠깐 후엔 뽄때나게 내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쳐질 거입네다. 크라식 카라고… 골동품 자동차들 위에 내가 앉아있을 거란 말입네다. 그 차 한 대 값이 평양에 있는 아파트 세 채와 맞먹는다는 거 아십네까? 그런 고급 차 위에 아바지 딸이 앉아있는 모습을 꼭 보셔야 합네다.”
“기럼. 보고말고. 너는 고급 차 위에 질끈 올라서고, 나는 당 서열이 높아져서 그동안 나를 깔보던 6사단장 어깨 위에 질끈 올라서야디. 암, 기래야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눈으로는 칼라 텔레비전을 통해 딸의 모습을 보고, 귀로는 최고급 중국제 무선전화기를 통해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그뿐이랴? 입으로는 아랫것들에게 상납 받은 러시아 산 보드카를 홀짝이고 있으니 세상에 더 이상 호사스러울 일은 없으리라 여겨졌다.
일단 출세하고 볼 일이었다. 수양 딸 예원희가 세계 갑부들과 어깨를 견주어가며 지낸다는 소문이 돌기가 무섭게 당 서열이 뒤처지는 소위 아랫것들로부터 적잖은 뇌물이 바쳐지곤 했던 것이다. 러시아 산 보드카는 물론이고, 지금 코밑에서 달큰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중국산 건어물 안주도 역시 뇌물로 상납 받은 것들이었다.
‘이 참에 내 이복동생이 남조선 재벌 회사의 최고참 간부라는 사실도 밝혀버릴까?’
도형철은 문득 거성 자동차그룹의 상무로 재직하고 있는 이복동생 도종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복동생도 동생 아닌가? 그의 배후에는 장차 거성 자동차그룹을 통째로 물려받을 재벌 2세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역시 그를 뿌듯하게 했다.
빈속에 들이킨 러시아 산 보드카 때문일까? 혹은 피라미드형 권력구조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섰다는 감격 때문일까? 정신이 알싸해지는 가운데 드디어 조선중앙 TV의 간판 아나운서가 근엄한 목소리로 중계를 시작했다.
예원희에게 들은 말 그대로였다. 오색 폭죽이 터지고, 브라스 밴드가 행진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크라식 카인지, 골동품 차인지 하는 것들이 줄줄이 화면 속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메인 경기인 5개국 관통 자동차 속도경주에 앞선 행렬이었다.
“도형철 동무, 축하하오.”
그와 동시에 무선전화기의 호출음이 울렸고, 가장 먼저 축하 전언을 던진 사람은 뜻하지 않게도 제6 사단장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 서열이 높다고 어깨에 힘을 주던 제6 사단장이 먼저 전화를 걸어 입에 발린 소리를 하자 도형철의 기분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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