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미등록 아동 발굴 조례 최초 마련한 시흥시
주민 요구로 시작된 발의…한 차례 부결 끝 제정
“외국인 배경으로 성장한 시흥, 자녀 세대도 지원해야”
한국에서 태어나 20년의 ‘추방 카운트다운’을 세는 이들이 있다. 미등록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대 자녀들이다. 교육권이 보장되는 청년기가 지나면 취업 혹은 유학 비자를 택할 수 있지만 ‘바늘 구멍’이고, 이마저 5년짜리 한시적 대책이다.미등록 외국인을 ‘불법체류’로 볼지, ‘필요인력’으로 볼 지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자녀 세대는 이야기가 다르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친구들과 인생네컷을 찍고, 블랙핑크를 좋아할만큼 한국인 정체성이 크다. 부모가 떠나도 자신들은 한국에 남겠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현행법 안에선 방법이 없다.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인구 감소가 가파르다. 그만큼 외국인 인력 유치도 가장 시급하다. 하지만 정작 국내 체류 미등록 외국인을 둘러싼 논의는 가장 후진적이다. 90~00년대 유입된 미등록 외국인들의 자녀는 지금 하나둘씩 청년이 되고 있다. 이들의 정착 필요와 그 방안을 고민해볼 시기다.“
〈무국적 청년들(下〉 - 지금도 태어난다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아직도 출생등록이 안 되는 애들이 있어요?’라는 반문을 서명 운동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 등록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것은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운동 공동대표단’으로 활동한 안소정 씨는 31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7월, 시흥시에선 전국 최초로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안’이 통과됐다. 외국인을 비롯한 시흥시에 거주하는 모든 출생 미등록 아동에게 의료 서비스 제공 등을 위한 ‘출생확인증’을 발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안씨는 “출생 사실이 공적으로 기록되는 것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이를 보장 받지 못하면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는 모든 권리로부터 배제된다”고 지적했다.
“시흥시, 외국인 배경으로 성장…보호 못 받는 외국인 아이들 있어”
해당 조례는 공단이 많아 다른 지역보다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시흥시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올해 4월 기준 58만6348명인 시흥시 인구 중 외국인은 5.2%(3만806명)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 외국인까지 합하면 외국인은 최대 2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
조례를 대표 발의한 시흥시 김수연 시의원은 “우리 시는 산업 단지를 배경으로 성장했고, 여기에서 일한 많은 외국인이 있었다”며 “그 속에서 출생했지만 국가의 출생 등록 제도나 체류 자격 등 다양한 이유로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조례 제정은 시민들의 요구에서 먼저 시작됐다. 안씨는 “외국인 아동 출생 등록제 등 아동들의 출생 등록을 위한 법제화 시도가 번번이 국회에서 계류되던 상황에서 지자체 차원에서 먼저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취지에서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연구소에 처음 제안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난 2021년 시흥시 내 시민단체들이 모여 14명 소속의 조례운동 공동대표단을 꾸렸고, 같은 해 진행한 서명운동에는 당시 시흥시장을 포함 2만2083명이 참여했다.
국내외 모든 아동의 출생 사실을 공적으로 기록하는 ‘출생확인증’ 발급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게 조례 운동의 시작이었다. 안씨는 “아동의 출생등록과 국적취득은 아동 부모의 국가 대사관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 한국은 아동의 출생을 증명해주는 문서가 없고 병원에서 발행하는 출생증명서가 전부이기 때문에 국적 취득부터 어려움을 겪는다”며 “건강보험이 없는 미등록 아동들은, 병원에 갈 길이 많은 영유아기에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추진단 구성부터 조례 통과까지 꼬박 3년
실제 조례안 통과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추진단 구성부터 꼬박 3년이 걸렸다. 지난 2021년 주민 발의로 시의회에 조례를 청구했으나 상위법과 저촉된다는 이유로 한 차례 부결됐다. 출생 등록은 국가 사무로 가족관계등록법 위임을 받지 않고 지자체에서 출생확인증을 발급하면 상위법인 지방자치법과 부딪힌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때 법적 한계와 주민들의 요구 사이 간극을 좁히는 데 노력한 사람이 김수연 시흥시의원이다. 시의회 입장에선 당초 발의안을 수정해 재상정하는 게 불가피했지만 추진단으로선 불신이 컸다. 김 의원은 “시의회에서 한 차례 조례가 기각되며 추진단이 시와 의회에 대한 불신이 커졌었다”며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만 4번의 간담회를 갖고 2차에 걸쳐 5명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등록’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장이 할 수 있는 ‘발굴과 지원’에 초점을 맞춰 제정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9개월간 미등록 아동 17명 발굴
조례 지정 이래 시흥시에서 발굴된 출생 미등록 아동은 총 17명이다. 이들을 대상으로는 우선 ‘시흥아동확인증’을 발급해 국적에 상관 없이 모든 아동에게 필수예방접종을 제공한다. 지자체 도움으로 출생 등록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이를 위한 법률 상담 등을 지원한다. 시흥시 아동돌봄과 관계자는 “양육 환경을 살펴보고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하거나 필요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해 사례관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김 시의원은 “최근 북유럽 선진국인 스웨덴이 갱단의 위협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며 “스웨덴은 외국인 노동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들은 위험하고 급여가 낮은 일을 하며 어렵게 정착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태어난 2세대는 출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불안으로 갱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그들만이 아닌 자녀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며 “조례가 외국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합의할 수 있는 화두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k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