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신은미 씨의 북한 체류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에 이어 또 다른 재미 교포 북한 체류기가 나왔다. 재미 소설가 수키 김이 펴낸 ‘평양의 영어선생님’(디오네 펴냄)이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평양에 머물렀던 2011년 7~11월의 메모를 바탕으로 한 회고록으로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북한 특권층 엘리트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전한다.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저자는 북한에 들어가서 살아보지 않고는 북한에 관한 의미있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외국인 교수를 모집하는 평양과기대에 신청, 입국 허가를 받고 들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사회 중 하나인 북한에 접근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유일한 방법은 그 길이었다.
그가 과기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마치 시험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듯 신중한 일이었다. 해서는 안된 말, e-메일 검열 등 누군가 자신의 강의를 녹음해 알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자기검열은 필수였다. 그러나 엄청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어린 학생들의 질문에 되도록이면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어한 저자의 진정성이 감동적이다.
그는 그곳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든 단어로 ’세금‘을 꼽았다. 북한 사회의 우월성을 그들은 모든 것이 무료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어 교재에 수시로 튀어나오는 ’여권‘이나 ’보험‘같은 단어를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그는 털어놨다.
힙합과 테크노도 마찬가지. 오직 위대한 수령에 관한 노래만 들어왔거나 최소한 그것만 들었다고 고백했던 사람들에게 힙합을 설명하는 건 쉽지않았다. 그 어려움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좌절감을 안겨줬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환경에서 세계와 연결되지 못한 학생들의 답답한 현실감과 고립감에 저자는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 학생들과의 대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쇼핑 등 외부활동에 대한 기록도 눈길을 끈다. 채소와 고기, 과일,의류, 가정용품, 전기기구 등을 파는 통일 마켓에서 물건값은 매주 요동쳤다. 10개들이 달걀은 3달러에서 2달러로 다시 3달러로 오르내렸고 신선한 과일은 너무 비싸서 사먹는게 불가능했다는 것.
저자의 서울 말씨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흥미롭다. “어디서 왔느냐”는 상인들의 물음에 “남한에서 자랐다”고 했더니 ‘고운’ 말씨를 듣고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 저자는 “처음으로 일반적인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을 좋아하거나 또는 어쩌면 우리를 마음속으로 우대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느낌을 전했다.
이런 태도는 학생들도 마찬가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허가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감시원들과 한국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억양이 매력적으로 들렸다고 했다. “정부가 남한에 독설을 내뱉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나를 놀라게 했다. 개인적 수수준에서는 여전히 따뜻함이 남아있었다”고 저자는 썼다.
저자는 떠날 날이 가까워오며 괴로운 심경을 적었다. “북한에 있는 것은 몹시 우울했다. 봉쇄된 국경은 38도선에만 있지 않고 도처에, 개개인의 마음에서, 과거를 봉쇄하고 미래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내가 이 소년들을 사랑하면 할수록, 또는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사이의 장벽은 무너뜨릴 수 없으며 그 뿐 아니라 결국 영속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납득돼가고 있었다”
책은 북한의 한 단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담아냄으로써 휴머니즘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배려의 마음과 글쓰기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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