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강남의 10억 원 대 아파트 소유자, 명문대 경영학과 졸업, 두 딸의 아버지.
겉으로 봐서는 어느 하나 남부러울 것 없던 40대 가장은 어느 날 자고 있던 두 딸과 아내를 목졸라 죽이고, 119에 신고한 후 도주했다. 이후 이 가장은 충북 대청호에서 투신을 시도하고 흉기로 손목을 긋는 등 자살을 시도했으나 결국 미수에 그쳤고,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에서 발생한 ‘서초 세모녀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 되는듯했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힌 강모(48) 씨의 말처럼 “생활고와 미래 불안 때문에 아내와 두 딸을 살해했다”는 사건 동기에 대한 의문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경찰 진술에 따르면 아내 통장에 3억원이 들어있었고, 집을 팔면 빚을 갚고도 6억원은 건질 수 있어 생활고를 비관할 정도로 살림살이가 쪼들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알려진대로 매매가 11억 원짜리의 146㎡(44평)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처음 이 아파트를 구매할 당시 은행 대출 없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부유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또한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외국계 IT기업에서 상무를 역임하는 등 2012년까지는 줄곧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아왔다.
강 씨와 그의 가족이 비극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재무회계 업무를 담당하던 대형 한의원에서 실직한 이후부터다. 직장을 잃은 강 씨 실직 사실을 주변에 숨긴 후 새 직장을 찾았지만 40대 중반 남성에게 남은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강 씨는 두딸에게 실직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선후배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전전하며 지냈고, 최근 1년 여 간은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의 고시원에서 낮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 씨는 이전의 씀씀이를 유지했다. 아내에게는 매 달 400만 원의 생활비를 주고, 주식으로 대박을 꿈꿨다. 이 모든 돈은 11억 원 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금 6억 원에서 나왔고, 주식 투자에 실패하면서 남은 돈이 1억3000만 원까지 떨어지자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강 씨의 인생 궤적에 비추어 강 씨가 “자신의 과거와 비교했을 때 박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같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전히 강 씨는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간 살아온 인생에 비해 불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표창원(49) 전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생활고가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이전의 삶과 비교했을 때 오는 박탈감을 느낀 것”이라며 “미래에 남은 것이 몰락 뿐이란 불안감 때문에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강남권의 고급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어쩌면 이보다 못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이전에 잘 살던 자신의 모습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좌절에 빠뜨렸고, 가족들에게도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할 수 없다는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씨의 극단적 행동은 결코 가장의 아픔으로 미화할 수 없는 범죄다. 이 교수는 “부모가 자식의 목숨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여기고 그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이 사건의 특이사항”이라며 “이런 종류의 살인을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로 미화하는 독특한 한국 사회의 문화는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7일 강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어릴 때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지식인”이라며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태였는지 여부도 추후에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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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 서초구에서 발생한 ‘서초 세모녀 사건’의 용의자 강모씨가 6일 오후 서초경찰서로 후송되고 있다. 김명섭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