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835세대 중 71등, 상위 8% 수준이네요. 게임하듯 경쟁이 생겨서 재밌어요.”
23일 수원 영통구 한 아파트단지. 이곳에 거주하는 이재훈 씨의 휴대전화 앱 화면엔 ‘71/835’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835세대 가구 중에서 71등을 기록 중이란 의미다.
이 순위는 실시간 전력사용량 순위. 순위가 높을수록 다른 집에 비해 전기를 조금 쓰고 있는 셈이다. 이 순위는 시시각각 전력사용량에 따라 요동친다.
이 앱은 매일 가정 내 에너지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앱 ‘이키퍼(E-keeper)’다. 실시간으로 전력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을 알려준다. 수원시의 ‘우리집 탄소 모니터링사업’ 일환으로 아주대 탄소제로에너지센터에서 개발했다.
가장 큰 이 앱의 매력은 바로 ‘경쟁’이다. 나 혼자 전기를 절약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단지 입주민 사이에서 서로 사용량으로 경쟁하고 순위가 나온다. 이씨는 “게임하는 듯한 재미”라고 했다.
누가 더 전기도 아끼고 돈도 아끼며 환경도 아끼는지 대결하는, 이 아파트단지의 신선하면서도 의미 있는 레이스다.
이날 이씨 가정의 전력사용량은 835세대 중 71등. 상위 8% 수준이었다.
지난 19일 이씨의 가정에선 전력 3.71㎾h를 사용했다. 다른 경쟁자(?)의 평균치(7.80㎾h)보다 절반 이하다. 하지만 20일엔 5.91㎾h를 사용, 순위를 더 올리지 못했다.
이처럼 매일 새로운 ‘성적표’가 나온다. 재미 삼아 순위를 확인하다 어느 순간엔 묘한 경쟁심까지 생긴다. 이런 식으로 전기를 아껴쓰게 되니 이씨는 실제 지난 3월 대비 4월에 전력사용량을 약 10㎾h 줄였다. 탄소로 계산하면 약 5㎏CO₂e로, 한 달 만에 소나무 약 1.2그루의 탄소흡수량을 아꼈다.
다섯 달째 이 앱을 사용 중이라는 이씨는 “전기를 잘 아끼고 있을 때는 탄소를 줄이는 모범시민이라는 생각이 들고, 못하고 있을 땐 낭비하고 있다는 각성이 든다”며 “자존감을 키워주는 게임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돈도 아낄 수 있다. 특히 매일 전력사용량을 확인하니 요금이 갑자기 늘어나는 누진세 구간까지 계속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전력사용량을 크게 줄인 가정엔 추가 혜택도 준다. 수원시는 최근 2년과 비교해 앱 사용기간 에너지를 절감할 경우 포인트를 지급할 예정이다.
현재 수원시에서 ‘이키퍼’ 앱을 시범적으로 사용하는 아파트는 5개 단지(영통 신나무실동보아파트·오목천 남광하우스토리·힐스테이트호매실). 아주대 탄소제로에너지센터에 따르면, 해당 단지 주민의 절반가량이 이 앱을 사용 중이다.
오는 6월부터는 9개 아파트단지가 더 참여한다. 지금은 전력사용량만 확인할 수 있지만 향후 수도와 가스 등 에너지 전반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박재현 아주대 탄소제로에너지센터 교수는 “탄소중립 중요성이 커지는 때 시민이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니 참여율이 높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