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핵심실세가 강력 추진
독과점 우려한 시장평가 무시
경영권 분쟁 한진칼에 先출자
EU·美 불승인 가능성 높아져
합병 무산되면 투자명분 상실
주가 40%↓, 평가손 2000억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불발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에서도도 경쟁제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또다시 해외 공정거래 당국의 반독점 문제 제기 가능성을 간과한 인수합병(M&A) 실패 사례가 될 듯하다.
아시아나항공도 대우조선해양도 모두 주도한 이는 당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다. 진보경제학자 출신으로 참여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역임한 ‘실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애초부터 독점과 관련된 우려가 많았지만 그는 이 같은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아시아나항공 건에는 이미 합병을 전제로 국책은행 자금이 투입됐다. 합병이 이뤄지지 않으면 산은 자금 5000억원을 매개로 한 아시아나항공 주식 인수 대금 1조5000억원은 대한항공에 남게 된다. 이 자금을 어찌해야할 지를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EU도 미국도 “합병하면 경쟁 제한”
EU집행위원회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결합할 경우 한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간 4개 노선에서 승객 운송 서비스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유럽과 한국 사이 모든 화물 운송 서비스의 경쟁 위축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EU는 일종의 중간 심사 결과를 담은 심사보고서(Statement of Objections)를 발송했다. 이에따라 대한항공은 일정 기한 내에 답변서를 제출해야 하고 6월까지는 경쟁제한 우려 해소 방안을 담은 시정조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EU는 8월 3일까지 합병 조건부 승인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는 18일(현지시간)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서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사가 합병하면 미국과 한국간 여객 및 화물 운송 경쟁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라고 전했다.
아직 미국 반독점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해 승인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법무부의 소송 검토는 만에 하나 반독점당국이 결합을 승인할 경우에 대비한 조치로 보여진다.
▶1·2위 국적항공사, 어쩌다 합병으로
2020년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자 당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대한항공과의 합병을 추진한다.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을 넘기기로 한 것처럼 업계 1위 회사에게 2위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맡긴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구조였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제3자배정 에 산업은행이 유상증자로 5000억원을 출자하면 대한항공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해서 이 돈을 받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구조다. 당시 한진칼은 KCGI와 경영권 분쟁 상황이었다. 산은은 증자 후 조원태 회장과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할 방침이었다.
KCGI는 산은을 상대로 한 한진칼의 유상증자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제3자 배정증자는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어 재무구조 개선이나 신기술 도입 등 제한적 이유로만 허용된다. 특히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활용될 수 있어 엄격히 제한된다.
예상을 깨고 당시 법원은 한진칼의 신주발행을 허용했다. 당시 한진칼과 산은은 증자가 이뤄지지 못해 아시아나항공이 문을 닫게 되면 대규모 실업사태까지 예상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를 강조한 셈이다. 해외 반독점당국의 승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사실은 간과됐다.
▶산은 돈 5000억원 43% 손실…1.5조 품게 된 대한항공
2020년 12월 1일 산은이 5000억원을 한진칼에 출자한다. 주당 인수가격은 7만800원이다. 3000억원의 교환사채(EB)도 인수한다. 2021년 3월 대한항공은 3조3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대주주인 한진칼은 산은에서 받은 돈으로 대금을 납입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에 쓴 돈은 3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인수한 것이 전부다. 주식은 인수하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는 여전히 주식 30.7%를 가진 금호건설이다. 국책은행과 일반주주들이 낸 3조3000억원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 1조5000억원은 대한항공 금고에 있다.
합병 계획이 철회돼도 산은이 낸 돈의 회수는 쉽지 않다. 현재 한진칼 주가는 4만1500원으로 증자 당시 신주 발행가의 57% 수준이다. 약 2000억원의 평가손실이다. 대한항공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EB도 손실구간이다. 주당 교환가액은 2만4317원인데 현재 대한항공 주가는 2만2000원 선이다.
현재 산은은 한진칼에 이사선임권(사외이사 3명)과 주요경영사항 사전협의권·동의권 등을 가지고 있다. 2020년 11월 양측이 체결한 ‘항공산업 구조개편 추진 등을 위한 투자합의서’에 의해서다. 하지만 항공산업 구조개편, 즉 합병이 무산되면 계약이 유지될 명분이 약해진다.
현재 한진칼 지배구조는 조원태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19.8%, 사실상 조 회장 우호지분인 미국 델타항공이 14.9%를 가진 1,2대 주주다. 호반건설(11.6%), 팬오션(5.85%) 등의 지분율이 높지만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 다만 산은 지분(10.58%)의 영향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다급하다던 합병…아직 홀로 살아있는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해 60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빚이 많아 금융비용 부담이 크지만 순이익도 소폭의 흑자로 돌아섰다. 2020년 11월 법원에서 양사 합병을 서두르지 않으면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다던 산은과 한진칼의 주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합병 기대 덕을 봤을 수는 있지만 그 사이 아시아나항공에 이렇다 할 지원이 이뤄진 것도 아니다. 산은(수출입은행 포함)과 대한항공이 가진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는 1조1600억원으로 평균 이자율이 무려 8.28%다. 연간 이자만 960억원이다. 내년부터는 단계적으로 0.5%포인트 씩 금리가 오른다.
합병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 지배구조도 개편해야 한다. 새 주인을 찾아 3자배정 증자를 하던지 산은이 가진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후 매각하면 된다. 어느 쪽이던 지금보다는 빚 부담이 줄어 재무구조가 나아질 가능성이 크다. 산은 입장에서는 후자 쪽이 자금을 회수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