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은, 가상자산사업자 조사권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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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현재 국회에서 가상자산 관련법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조사권을 부여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를 두고 한은은 금융위원회와 힘 겨루기를 벌여왔는데 최근 금융위가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국회에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가상자산법에 한은의 자료제출요구권 부여를 명시하는 방안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주 정무위 법안소위원회를 앞두고 국회가 정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금융위가 이같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오는 25일 열리는 법안1소위에서 이런 입장을 공식 표명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법 논의도 다시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달 국회는 가상자산 관련법안을 본격적으로 다뤘는데 ▷한은의 자료제출요구권 부여 여부 ▷금융감독원의 가상자산사업자 검사권 명시 여부 등을 놓고 기관 간 이견이 좁혀지지 못했다.

그동안 한은은 가상자산사업자 및 발행인에 대한 자료제출요구권을 자행이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특히 스테이블코인(가격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의 경우 통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통화당국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또 가상자산시장의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될 수 있기에 금융안정을 목표로 하는 한은의 관리 대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맞서 금융위는 가상자산법 논의 과정에서 한은이 개입될 경우 되레 가상자산의 화폐성을 인정하는 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펼쳤다. 금감원의 검사권에 대해서도 “가상자산법에 금감원의 검사권을 명시할 경우 일반인들에게 가상자산 시장·업자가 금융 시장·기관과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오해를 야기할 것”이라며 선을 그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는 한 발 물러나 한은의 자료제출요구권 부여를 수용한 것이다. 3년 전에도 금융위는 한은과 지급결제감독권한을 두고 충돌한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를 비춰볼 때 이번의 반대 의사 철회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때 논란이 된 건 디지털 지급 결제 청산업 제도화 부분이었는데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이 핀테크업체들의 실시간 정산을 맡고 여기에 관리와 감독을 전담하겠다고 하자 한은이 반기를 들면서 대립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요구한 규제권한이 조사권(자료제출요구권) 수준이라서 수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무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규제권한이 강한 검사권이었으면 또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규제 독점’이라는 비판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달 말 정무위 소위에선 여야 구분 없이 금융위가 가상자산 관할권을 독점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지난달 28일 법안1소위에서 암호자산법을 대표발의한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금융위는 한은이 자료요구권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법안에 담는 것은 거부하고 있다”며 “금융위가 암호자산업을 금융위 테두리 안에만 두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가상자산 조사권은 금감원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발의된 법안 대부분은 금융위에 불공정거래 조사권한을 부여하되 업무 범위를 금감원에 위탁하는 규정을 담았다. 하지만 지난달 소위를 기점으로 금감원의 검사·감독권한을 별도 조항으로 담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선 금융위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시 정무위 여당 간사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가상자산시장에서 해외로 불법으로 나간 돈이 12조원인데 전부 금감원이 체크해서 검찰의 수사 의뢰한 것”이라며 “불공정거래행위 조사를 위해 금감원의 인력을 더 증원한다든지, 규정을 둬야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