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지음 <삼팔선>, 역사의 교훈 글 속에

삼팔선 역사적 의미와 그 배경, 오늘의 반추

저자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경식 저 ‘삼팔선-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김경식 저 ‘삼팔선-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5년전 쯤 일이다. 형, 동생하며 살갑게 지내는 지인 하나가 부탁을 해왔다. “우리 장인이 책을 냈어요. 근데 어디 부탁할 데도 없고, ㅎㅎㅎ.” 서평을 써달라는 뜻이다. 사위로서 첫 책을 낸 장인 체면을 세워주고 싶어하는, 가상한 뜻이 엿보인다. 장인은 80가까운 분이었다. 조금은 난감했다. 어차피 장인이 전문 작가도 아닌데, 서평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약간의 고민이 생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펼치니 ‘필’이 전해온다. 문체는 투박했고 아마추어 냄새가 물씬 났지만, 80인생의 철학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때 책의 제목은 ‘가을낙엽의 이야기’였다.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윤동주 시인이 20대에 다짐한 것을 나는 나이 80이 가까워서야 깨닫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중략) 내 삶이 아름답지도 못했으며, 무엇 하나 뚜렷하게 열매를 맺은 것도 없다.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제 20대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없는 일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아 있는 가을동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물으며 살아가야 겠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귀였다. 새파란 잎을 내놓으면 언젠가 누렇게 돼 땅으로 떨어지는 인생, 그 인생 마무리 지점에서 작가가 손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었단다. 아, 의미가 있는 책이구나. 할아버지의 인생 철학을 다정하게 손주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그 뜻 자체가 우리 사회에 일종의 귀감일 수 있다고도 여겨졌다. 곧바로 펜을 들었고, 서평을 올려줬다. 사위는 기뻐했다. “장인 어른이 엄청 좋아하세요. 저도 모처럼 사위다운 일을 한 것 같아 즐겁습니다. 칭찬도 받았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해보니 책상에 우편물이 하나 와 있었다. 책 한권과 〈친전〉이라는 제목으로 편지 한장이 끼어 있다. 그때의 지인이 보낸 것이다. 내용은 이랬다. “몇년전 장인 어른이 쓴 책을 전해주었을때, 훌륭한 서평을 써준 기억이 있고 그때 장인께서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금번 새로 출간을 맞이해 그때 일이 생각나 책을 보냅니다. 귀한 시간을 할애해서 잠시나마 살펴봐 주시면 어떨런지요?.” 이건 대놓고 서평을 써달라는 뜻이다. 장인을 위하는 사위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면서 편지를 다 읽어봤다. 사위는 몇마디 더 붙여놨다. “장인께서는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독특한 시각으로 당신의 역사관을 정리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는 매우 달리해서 나름대로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출간하셨는데, 봐주시면…”. 이런 내용이다. 역사라?

제목을 보니 ‘삼팔선’이다. 부제는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로 돼 있다. 다 떠나 참으로 열심히 사는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는 1940년생이다. 올해로 여든세살이다. 5년전 손주들에게 들여주는 삶의 이야기 책을 냈을때가 일흔여덟살이었고, 5년후인 여든세살인 지금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로 다시 한번 찾아온 셈이다. 참으로 대단한 양반이다. 책을 낸다는게 쉬운 게 아닌데, 최소한 지난 몇년간 자신의 기억과 역사의 기억을 더듬으며 고통의 집필 후 이 책을 냈을 것이다. 그 연세에 이렇게 정열적으로 사신다는 것 자체 하나 만으로도 삶의 좋은 모델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래도 조금 부담은 된다. 역사책 서평을 쓰기 쉽지 않다. 특히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풀어낸 역사는 서평화하기 어렵다.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역사, 다분이 주관적일 수 있는 역사, 자기 쪽으로 해석하기 쉬운 역사…. 객관화가 증명되지 않은 역사관을 논평하기엔 기자의 역량이 한참 달린다는 점에서라도 이런 일은 피해왔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1940년생으로, 전쟁과 이데올로기 시대를 거쳐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현재도 극복되지 않은 갈등 사회에서 80넘은 어른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수 있고, 이는 작가 집안의 손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젊은층도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맘이 든 것도 사실이다. 책을 정독해본다.

책의 제목은 ‘삼팔선-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다. 책의 주된 내용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삼팔선’이 주는 역사적 의미와 오늘날의 교훈이다. 저자인 수연(호) 김경식 선생은 일제시대 민족 수난기인 1940년 태어났다. 역사의 산증인이기에 해방과 정전, 그리고 분단, 글로벌 전쟁과 갈등, 최근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역사의 강’을 그렸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책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내놓는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지, 오늘도 삼팔선 상공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오늘을 살고 미래를 열어야 할 너희들은 엄혹한 국제정세를 냉정히 파악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역사는 오늘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목차는 ▷해방과 함께 탄생한 삼팔선 ▷소군정과 미군정 시대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 수립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 ▷삼팔선을 만들어낸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 ▷항일 독립운동의 전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장이 된 한반도 ▷러시아 공산혁명 ▷한국의 공산주의 등으로 구성됐다. 조선의 멸망과 일본의 침략과정도 곁들였다. 저자가 태어나서 지켜봤거나, 혹은 선배들에게 배웠던 척박한 시대를 풀어냄으로써 아픔의 역사를 다시금 오지 않게 하자는 게 책의 골자다. 수난의 역사, 오욕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침과 동시에 그에 대한 경계를 담은 것이다.

저자의 이런 경계심은 워싱턴 D.C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문구로 대신한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지은이는 제주사범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을 전공했다. 행시 합격후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총무처, 대통령비서실, 동력자원부를 거쳤다. 나중에는 LG그룹에도 근무했다.

지은이는 고등학교 교사때는 역사 담당 교사였다고 한다.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역사 서술과 그 평가. 가르침에 중점을 둔 사건 나열과 역사의식. 아쉬운 점은 분명이 있다. 하지만 한때의 역사 선생님으로 파란만장한 역사의 강을 건너온 어느 80대 할아버지의 손자들을 향한 역사 교훈은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 같다.

출판사는 도서출판 한림당, 383페이지, 2만8000원.


ys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