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자체가 ‘브랜드’가 된 모범작 캣츠

초연 당시엔 ‘크레이지 아이디어’ 평가

공감·위로 ‘냥집사’ 시대 필수 관람극

‘캣츠’는 시대에 따라 달리 읽혔다.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보편성’이다. 최근엔 또 다른 시각이 등장했다. 2016년 이후 증가한 육묘 가구로 인해 이른바 ‘냥집사’들의 필수 관람 공연이 되고 있다. [에스앤코 제공]
‘캣츠’는 시대에 따라 달리 읽혔다.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보편성’이다. 최근엔 또 다른 시각이 등장했다. 2016년 이후 증가한 육묘 가구로 인해 이른바 ‘냥집사’들의 필수 관람 공연이 되고 있다. [에스앤코 제공]

사람들이 찾지 않는 도시 뒷골목. 폐타이어와 세탁기, 낡은 구두와 쓰다 만 치약이 버려진 곳. 고양이들의 눈에 비춰져 최대 10배로 확대한 신비롭고 경이로운 세계. 무대 위로 커다랗고 둥근 달이 떠오르면 ‘고양이들의 축제’가 막이 오른다. 매끄럽고 폭신한 털을 단 고양이들이 날렵한 몸짓으로 하나 둘 무대에 뛰어오른다. 이제 시작이다. 인간은 상상도 못할 마법 같은 축제의 밤이다.

‘캣츠’(3월 12일까지·세종문화회관)가 돌아왔다. 팬데믹이 강타한 2020년에 이어 3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찾은 뮤지컬은 현재 공연 중인 대극장 작품 중 손에 꼽힐 만큼 흥행 성적이 좋다. 같은 공연을 여러 차례 보는 ‘회전문 관객’이 주를 이루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캣츠’는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으면서도 꾸준히 흥행 성과를 내고 있는 ‘캣츠’는 N차 관람의 회전문 관객이 다수를 차지하는 기존 뮤지컬과는 완전히 다른 재질의 관객으로 구성돼있다”며 “1회차 관람이 다수를 이루는 공연으로 회당 3000명에 가까운 관객이 7주간 찾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관객 연령대도 다양하다. 2030 여성 관객들의 비중이 압도적인 기존 대극장 뮤지컬과 달리 ‘캣츠’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20대가 26.1%, 30대가 27.8%, 40대가 29.4%, 50대가 11.6%(인터파크 기준)나 된다. 40대 비중이 높은 이유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볼 수 있는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캣츠’ 내한공연에서 ‘극장 고양이’ 거스를 연기하는 배우 이안 존 버그는 “이 작품은 모든 연령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아이들을 위한 뮤지컬은 아니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고 교감할 수 있는 참여형 공연이라는 점에서 세대를 아우른다”고 말했다.

▶ ‘크레이지 아이디어’...예상치 못했던 성공

‘캣츠’의 성공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초연 당시 작품엔 혹평이 따라다녔다. “역사상 최악의 아이디어”, “미친 아이디어”라는 냉혹한 평가였다. 혹평의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인간’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뮤지컬,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가 아닌 옴니버스 형식의 뮤지컬, 분장으로 뒤덮여 스타 배우에 의존할 수 없는 뮤지컬 등이다.

이 작품은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서 출발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 ‘젤리클 볼’에 모인 고양이들이 각자의 묘생(猫生)을 들려준다. 영국의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의기투합했고 안무가 고(故) 질리언 린이 발레부터 탭댄스, 아크로바틱 등의 고난도 안무를 작품에 녹였다. ‘고전의 힘’은 증명됐다. 올해로 탄생 43주년을 맞는 ‘캣츠’는 전 세계에서 7550만 명이 관람한 ‘스테디셀러’가 됐다.

지혜원 교수는 “스타 캐스트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흥행을 기록하는 ‘캣츠’는 지난 40여년간 작품 자체가 브랜드가 된 뮤지컬이다. 어떤 의미로는 가장 모범적인 뮤지컬의 사례로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인종 차별·정치 갈등·사회적 편견도 없다”...보편적 가치의 힘

‘캣츠’는 시대에 따라 달리 읽혔다.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보편성’이다.

뮤지컬 ‘캣츠’에서 10년째 그리자벨라 역으로 출연 중인 세계적인 디바 조아나 암필은 “다른 공연과 달리 정치적인 내용이 없고 의견이 엇갈릴 만한 스토리도 담지 않았다”며 “순수하게 공연만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지혜원 교수 역시 “‘캣츠’는 영리한 작품이다”라며 “인종 차별, 정치 갈등, 사회적 편견을 담지 않으면서 인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고양이를 캐릭터화해 문화와 시대를 관통하는 코드를 심었다”고 분석했다.

지혜롭고 현명한 선지자 고양이, 화려한 삶을 살다 추락한 그리자벨라, 먹을 것을 좋아하는 부자 고양이 버스터퍼 존스.... 해설자 역할을 하는 고양이들은 장면 장면의 주인공이 된 이들을 설명하지만, 그들을 평가하지 않는다. 하나씩 등장하는 이들의 삶에는 인간사의 희노애락이 녹아있다. 관객들이 ‘캣츠’에 공감하는 것도 고양이의 이야기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기 때문이다. 세상의 풍파를 겪은 그리자벨라를 통해 울려 퍼지는 ‘메모리’는 고단한 우리의 삶을 어루만지는 ‘불후의 명곡’이다.

주관사 클립서비스 관계자는 “‘캣츠’에선 작고 이름 없는 고양이의 삶에도 이유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타인의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을 들려주고, 작품 말미 ‘고양이에 대한 예의’를 통해 ‘나와 타자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 이 작품이 오래 사랑 받아온 이유다”라고 말했다.

▶냥집사 시대에 다시 만나는 ‘캣츠’...달라진 관객 반응

‘기발한 상상력’은 최근 몇 년 사이 더 빛을 발했다. 국내에서도 고양이 가구가 늘기 시작하며 ‘캣츠’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넘어 이른바 ‘냥집사’(고양이 집사)들의 필수 관람 콘텐츠가 됐다. 반려동물 업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1인가구 증가 추세에 발 맞춰 육묘 가구도 늘기 시작했다. ‘냥신’으로 불리는 스타 수의사 나응식은 “고양이를 통해 정적인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나타난 현상이다”라고 봤다.

고양이와 가까워지며, 관객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캣츠’ 공연 초창기만 해도 객석으로 내려오는 고양이에 대한 여성 관객들의 원성이 높았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부 교수는 “고양이를 귀여운 반려동물로 생각한 것이 오래전 역사가 아니다”라며 “‘캣츠’ 공연 초창기만 해도 고양이들이 옆에 다가오는 것이 낯설어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이 많았다. 지금은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또 다른 생명력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공연 중인 세종문화회관에서도 고양이의 대한 호감도가 달라진 것을 체감하게 된다. 객석을 뛰어다니는 고양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관객들이 많다. 냥집사들이 바라보는 ‘캣츠’는 더 각별하다. 주옥같은 명대사가 나오지만, 냥집사들의 ‘최애 대사’는 따로 있다. “고양이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대사다.

16만 3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베니패밀리를 운영하는 박권혜 씨는 “한국은 오래전부터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길고양이는 도둑고양이라 불렸고 드라마나 만화에서도 착하고 의리있는 개와 달리 악당으로 묘사됐는데, 오랫동안 설움 받은 고양이 집사로서 사이다 같은 반가운 대사다”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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