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백신영·최진영 지음, 작가정신)=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미래를 살피는 ‘소설, 잇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조용한 입소문 소설 ‘구의 증명’으로 유명한 최진영과 1930년대 여성의 처절한 목소리를 담아낸 식민지 시대 작가 백신애의 후기 소설을 만날 수 있다. 표제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최진영이 백신애가 백년 전 제기했던 여성 억압의 문제를 새롭게 풀어낸 소설. 백신애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강렬한 정념 대신 “서서히 사로잡히는” 사랑을 그려낸다. 사십 대 여성과 이십 대 여성의 사랑이지만, 금지된 욕망과 파괴적인 무엇도 아닌 “가장 편안하고 평범한 얼굴”을 한 사랑이다. 이십 대 취준생인 나는 낮엔 도서관에서 공부를, 저녁엔 편의점과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수시로 불안감이 찾아든다. 그러던 중 주말 아르바이트 장소인 펍에서 순이를 만나고 둘은 음악이나 영화, 잠자기 전 하는 생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두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백 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여성을 비롯하여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가 작동하고 있지만 이들은 “직장과 가정이 주는 피로감”안에서 나를 나이게 하는 자유로운 순간을 공유한다. 최진영은 이번 작업에 대한 소회를 담은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에서 1938년 발표한 백신애의 ‘광인일기’의 화자를 현대로 바꾸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현재에도 어떤 자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인생을 바꾸는 관계의 힘(마리사 킹 지음, 정미나 옮김, 비즈니스북스)=MBTI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알고자 하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도구이기도 하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일대 비즈니스 스쿨의 조직행동학 교수인 마리사 킹은 성공한 사람들의 인간관계에는 특별한 유형이 있다고 본다. 15년 넘게 인간관계 패턴을 연구해온 관계전략의 전문가인 킹은 신경과학, 심리학, 네트워크 분석 등을 통해 인간관계의 세 가지 기본 유형을 밝혀냈다. 그는 누구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모습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계의 유형을 인지하기 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관계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이해하느냐의 여부다. 저자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재능을 활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반드시 관계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서는 하기 힘들지만 타인과 함께 함으로써 가능한 인생의 성취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상호 교류 속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책은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담고 있는데, 가령 직장에서 주도권과 통제권이 회사나 직장 상사가 갖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은 본인이 갖고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인생의 단계마다 혹은 처한 상황마다 다른 관계의 패턴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색다르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박형은 옮김, 동아시아)=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과학의 탄생’‘16세기 문화혁명’을 잇는 서구 근대과학 탄생사 3부작 중 완결편이다. 과학이 왜 서구 근대에서 탄생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련의 책에 이어 이번에는 15세기 중기부터 17세기까지, 중부 유럽을 무대로 한 세기 반에 걸쳐 전개된 천문학과 지리학, 즉 세계 인식의 부활과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동아시아에서 세 권으로 분권 출간되는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제2권은 코페르니쿠스가 일으킨 지동설이 등장한 이래 상극적인 우주론들이 나타난 유럽의 16세기, 즉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세계관이 이행해 가는 과도기랄 시기의 과학 발전상과 세계관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코페르니쿠스가 유럽의 세계관에 던진 화두와 한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한 학자들의 논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무관심했던 신학계, 종교개혁에 동반된 교육개혁으로 천문학과 수학이 중시된 독일의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지동설이 과학의 발전을 추동한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16세기는 14~15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에 끼인 골짜기처럼 여겨진 시대이다. 이 시기에 문화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지식 세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60년대 도쿄대 투쟁을 이끈 전공투 의장 출신으로, 60년대 급격한 경제 발전과 정치사회적 요동 속에서 ‘일본사회가 사실 근대화를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과학사 연구사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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