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프라임필과 라흐마니노프 협연
“라흐마니노프는 나의 아이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앙코르만 무려 여섯 곡에 달했다.
“제가 원래 그렇게 앙코르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웃음) 앙코르를 몇 곡을 할 건지를 정해놓지도 않고요. 청중과 호흡하면서 정하는 편인데, 그날은 열정적으로 환호해준 관객들에게 보답하고 싶었어요.”
객석의 뜨거운 기립박수에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는 쑥스러운듯 인사와 연주를 반복했다. 플레트뇨프 편곡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를 시작으로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 메트너의 ‘회상 소나타’, 프로코피예프 ‘토카타’를 지나 메트너의 ‘요정 이야기’, 다시 플레트뇨프의 ‘호두까기 인형’ 중 트레팍까지…. 지난 9월 첫 한국 리사이틀에서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불과 한 달여 만이다. 그는 오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1번과 3번을 연주한다.
지난 25일 공연을 앞두고 만난 그는 “살면서 만났던 관객들 중 한국 관객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가장 따뜻하고 좋은 관객을 만난 시간”이라고 했다.
첫 한국 리사이틀에선 공연만 소화하는 일정으로 방문했지만, 이번엔 제법 오래 머문다. 그는 “지난 9월에는 정말 호텔 창문과 차창 밖으로만 서울을 봤다”며 “이번엔 4박 5일 일정으로 와 한국 음식도 먹고, 서울 야경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저녁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한 연주에선 지난 5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갑작스럽게 취소됐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의 프로그램을 올린다. 그는 “이번에 연주하는 협주곡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러시아의 철학과 문학이 담긴 곡”이라며 “지금 무대에서 이 작품을 완벽히 완성했다기보다 앞으로 평생 갈고 닦아야 하는 곡”이라고 말했다.
“음악을 하기 이전부터 부모님은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음악을 틀어주셨어요. 그 때 이미 라흐마니노프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전문 연주자가 된 이후로는 그의 작곡가적 능력과 연주하는 손, 마음, 머리를 더 존경하고 따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라흐마니노프는 저를 키운 작곡가이고, 저의 아이돌이에요.”
열세 살의 나이에 차이콥스키 영 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 우승한 말로페예프는 이후 별다른 우승 기록 없이도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연주자다. 이미 발레리 게르기예프, 리카르도 샤이, 미하일 플레트뇨프, 정명훈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한 무대에 서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다. ‘제2의 키신’이라는 수사도 끊이지 않고 따라 온다.
말로페예프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닮았다고 해주는 이야기가 내겐 너무나 큰 영광이다”라며 “키신의 쇼팽 연주를 들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너무나 완벽한 연주라 난 감히 도전을 못하고 있다”며 몸을 낮췄다.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리며 주목받은 그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를 잇는 연주자’로도 꼽힌다. 그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에 이름을 올려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전 지금 베를린에 살고 있지만, 러시아에서 배워온 것들을 깊이 간직하고 있어요. 제가 어디에 살든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제 몸과 영혼 속에 깃들어 단단하게 세워진 그것이 피아니스트로의 제 힘이라고 생각해요.”
올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말로페예프는 그 무렵 예정된 공연이 20개나 넘게 취소됐다. 지난 5월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당시 모스크바를 떠나 베를린에 정착했고, “지금도 전쟁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처참”하다고 한다. 말로페예프는 “내가 영향력이 있다면 이 전쟁을 멈추는 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연주를 할 때마다, 어떤 ‘물방울’ 안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안에서 매일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 현실의 의무와 고단함에서 벗어나 음악을 듣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게 제 음악의 방향성이에요.”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