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9만 년 전, 지구에 MIS6(해양 동위원소 6단계)라고 부르는 빙하기가 시작됐다. 지구는 대부분 차고 건조해졌고 가뭄이 널리 퍼졌다. 특히 아프리카 평원은 생물이 살아가기엔 너무 혹독하고 황량한 곳으로 변했다. 먹을 게 없던 이 시기 호모 사피엔스의 수는 몇 백 명 수준까지 떨어져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헤쳐나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연체동물이었다. 아프리카 대륙 남쪽 해안 피나클 포인트에는 홍합, 굴,조개, 달팽이들이 가득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약 16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중 한 무리가 이 지역의 풍부한 조개류와 갑각류를 식용으로 취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해산물을 주요 식단으로 처음으로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 출신의 의학 및 과학전문 저널리스트인 브렛 스텟카는 ‘뇌 진화의 역사’(리가서재)에서 다양한 식료를 취하는 잡식성이 인간의 진화사에서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진화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절한 영양, 에너지를 취하는 게 필수다. 치아 화석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발생한 기간, 우리 조상들은 채식 위주의 식단에서 고기와 과일, 채소를 고루 먹는 잡식성으로 변했다.
반면에 기후변화 등으로 기존의 먹을 거리를 얻기 어려워졌을 때 다른 먹을 거리로 대체하지 못하거나 기존의 먹거리를 고수했던 다른 인간 종은 멸종했다.
이를테면 우리의 사촌인 파란트로푸스, 아우스트랄로피테쿠스는 기후변화가 왔을 때 채식주의를 고수했다. 숲에서 열매가 부족해지자 그들은 소화가 잘 안되는 초원의 풀에 의존했고 결국 100만 년 전에 지구에서 사라졌다.
저자는 이런 잡식성이 인간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고온이 지속돼 숲에서 열매를 구할 수 없게 되면 땅속에 묻혀 있는 뿌리나 줄기로 영양을 공급했다. 아우스트랄로피데쿠스는 딱딱한 먹을 거리에 완전히 적응돼 있지 않았지만 호미닌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턱과 치아의 크기는 줄고 치아에 입혀진 애나멜은 더 다양해진 식료를 처리하기 위해 더 두꺼워졌다.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를 거치면서 치명적인 송곳니는 잃는 대신 애나멜을 입힌 치아로 가득 찬 작은 입을 갖게 됐고 이것으로 부드러운 다육질에서부터 딱딱한 섬유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식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뇌의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식재료는 바로 고기다. 두 발로 선 조상들은 숲에서 초원으로 나서게 되면서 육식에 적응해야 했다. 이후 단백질과 지방, 풍부한 열량에 힘입어 인간의 뇌는 부풀어 오르듯 커졌다. 육류가 뇌의 진화에 두드러진 역할을 한 것이다.
고기 섭취는 처음엔 사자, 호랑이 등 고양잇과 동물들이 먹다 남긴 사체를 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학자 브리아나 포비너는 2013년 케냐에선 150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3700여 점의 동물 화석과 돌로 만들어진 도구 약 3000여 점을 조사했는데, 호모 에렉투스가 지속적으로 동물의 사체를 조각 내 먹었음을 밝혀냈다. 고기가 원생 인류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필수가 된 것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초기 인류는 질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서게 되고 불을 이용, 익힌 고기를 섭취했다.
초기인류는 양양가 높은 식사를 하게 되면서 인지 능력이 향상되고 높아진 지능은 더 창의적인 작업을 추구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서로 도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책은 원시 동물인 바다수세미, 양서류에서 파충류로의 연결고리인 틱타알릭으로부터 200만년의 긴 인류의 진화를 밝혀낸 주요한 발견들을 따라가면서 인류가 생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인들을 명료하게 풀어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뇌 진화의 역사/브렛 스텟카 지음, 이채영 옮김/리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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