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싱가포르가 내년 독립 50주년을 앞두고 정체성 딜레마에 빠졌다.
빈부격차와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면서 도시국가의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싱가포르가 진정 글로벌 도시로의 도약을 원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소국 싱가포르, 불안한 미래=싱가포르 국토 면적은 669㎢로 서울(605㎢)보다 조금 큰 수준이다. 인구는 530만명으로 서울 인구의 절반이다.
하지만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다. 미국(5만4678달러)보다 높고, 한국(2만8739달러)의 두배에 달한다.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는 식민시기 이후 1인당 GDP 550달러에서 100배 넘게 성장한 대표적인 ‘강소 도시국가’다.
하지만 현재의 싱가포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싱가포르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경제 기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지적했다.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우리는 지금 변곡점에 있다”며 “기어 변화와 기로 변경을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현재 성공과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가 다루어야 할 현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복합적인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고질적인 저출산은 해외 이민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전체 인구 530만명중 130만명이 이민자이고,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중국출신 이주 노동자다.
소득 불균형은 무관세 금융 허브인 싱가포르에서 더 확대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상속세와 자본 이득세가 없고 세율 또한 낮아 전 세계 많은 부자들에게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꼽히며 지난 몇 십 년간 많은 부를 축적했다.
연구조사업체 웰스엑스에 따르면, 3000만달러 이상 자산을 소유한 사람은 인구 100만명당 225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자산규모는 평균의 8배 이상이다. 이는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맥라렌 등 초호화 자동차메이커들을 끌어들이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경영대학 리엔사회혁신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영속적 인구(상시거주인구)의 10~14%는 월평균 소득(4인가족기준) 1250싱가포르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이는 싱가포르에서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1400~1500싱가포르 달러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작년 기준 0.478을 기록하며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정체성 딜레마=더 큰 문제는 싱가포르가 정체성 딜레마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최대은행 DBS의 피유시 굽타 대표는 “싱가포르는 일견 지속적인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며 “싱가포르가 정말 글로벌 시티를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작가 수드히르 토마스 바다케스도 “세계화와 저출산, 높은 이민률의 조합은 기본적으로 싱가포르인들에게 경제 기적을 일군 아버지 세대와 연결되는 정체성의 본질을 전복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인의 ‘핵심’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국적 국민의 체감 정체성과는 거리가 있다.
IMF는 지난달 “(싱가포르 정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 둔화 계획과 경제 개혁은 잠재 성장을 약화시키고 경쟁력을 저하시킬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생산성 향상은 구체화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싱가포르국립대의 리콴유공공정책스쿨 키쇼르 마부바니 학장은 “싱가포르는 지난 50년간 매우 성공적으로 번영했기 때문에, 과거의 도전과 시험의 틀에 박혀있는 기업처럼 갑자기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FT는 “전문가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경제모델을 채택해 새로운 재도약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예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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