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입단동기 ‘감초 배우’

2년 만의 재연 ‘춘향’서 향단ㆍ방자

초연 때 애드리브 대본으로 이어져

비중 높아지고, 입체감 더한 캐릭터

대사 없이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고민 깊어져

유태평양 “운명적 작품 만나고 싶어”

조유아 “완창 판소리 도전하고 싶어”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로, 2016년 입단 동기인 유태평양, 조유아가 창극 ‘춘향’에서 방자와 향단 역할로 4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춘향과 몽룡 사이의 연결고리인 두 사람은 “우리가 없으면 ‘춘향’이 될 수가 없다”며 호탕하게 말했다. 이상섭 기자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로, 2016년 입단 동기인 유태평양, 조유아가 창극 ‘춘향’에서 방자와 향단 역할로 4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춘향과 몽룡 사이의 연결고리인 두 사람은 “우리가 없으면 ‘춘향’이 될 수가 없다”며 호탕하게 말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월 단오날이 되면 춘향과 몽룡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남원의 터줏대감’ 향단과 방자도 있다. 풋풋한 ‘사랑가’에 절절한 ‘이별가’, 화려한 ‘어사출도’까지 볼거리, 들을 거리가 넘쳐도 이 둘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춘향과 몽룡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두 사람은 대사 한 줄, 몸짓 하나가 ‘강력한 존재’다.

“저희가 없으면 ‘춘향’이 될 수가 없죠. (웃음)” (유태평양, 조유아)

‘척하면 척’이다. 춘향과 몽룡처럼 대놓고 사랑은 안 해도 알아서 할 건 다하는 ‘영혼의 단짝’이다.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유태평양(30), 조유아(35)는 “향단과 방자는 춘향과 이도령의 조금 더 풀어진 버전”이라며 관계성을 귀띔했다. 두 사람은 4일 막을 올릴 ‘춘향’(8일까지·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어리고 풋풋하지만, 춘향과 몽룡이 양반의 자식들로 격조를 차리는 캐릭터라면 방자와 향단은 그런 면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들이에요. 대본에 사랑을 한다는 표현은 없는데, 우리 둘이 하다 보니 자꾸 뭔가를 만들게 돼요. (웃음)” (유태평양)

조유아가 보는 향단과 방자는 ‘썸’이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노래 ‘썸’ 가사) 두 사람이다. “소꿉친구 같기도 하고 애인 같기도 한 관계,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사이죠.”(조유아)

두 사람이 등장하면 익히 알고 있던 고전에 새옷이 입혀진다. 너무 잘 알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무대는 금세 활기를 띤다. 아무리 짧은 등장도 압도적이라, 모든 장면의 ‘신스틸러’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극에 따라서 내가 망가져야 하는 극이 있고, 그런 부분을 자제하면서 진중하게 가야할 때가 있잖아요. 저희는 둘 다 노는 것도 장난 치는 것도 좋아해 방자나 향단 같은 캐릭터를 만났을 때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유태평양)

2016년 입단 동기인 두 사람은 지난 7년간 동고동락하며 서로를 지켜봤다. 입단과 함께 국립창극단 전원이 프랑스 공연을 간 한 달 동안 단둘이 한국에 남겨지며 ‘단짝’이 됐다. 조유아(왼쪽)는 ‘밥 잘 챙겨주는 누나’였고. 유태평양은 ‘잘 따르는 동생’이었다. 이상섭 기자
2016년 입단 동기인 두 사람은 지난 7년간 동고동락하며 서로를 지켜봤다. 입단과 함께 국립창극단 전원이 프랑스 공연을 간 한 달 동안 단둘이 한국에 남겨지며 ‘단짝’이 됐다. 조유아(왼쪽)는 ‘밥 잘 챙겨주는 누나’였고. 유태평양은 ‘잘 따르는 동생’이었다. 이상섭 기자

2016년 입단 동기인 두 사람은 지난 7년간 동고동락하며 서로를 지켜봤다. 첫 만남의 기억도 생생하다. 여섯 살에 이미 ‘흥보가’를 완창, ‘국악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유태평양은 조유아에게 “부담스런 동생”이었다. “워낙 유명했던 만큼 약간의 부담이 있었고, 고집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조유아) 유태평양은 조유아를 ‘무서운 선배’로 기억한다. “해오름극장 분장실이 있는 계단에서 누나를 처음 봤어요. 인사를 안 받아주더라고요. 처음엔 인상도 차가워, 엄청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유태평양의 폭로에 조유아는 “기억이 안 난다”며 박장대소다. “누나의 눈빛을 기억한다”며 재연하는 동생에게 그는 “우러러 본 거”라며 반박한다. “이 자식, 내가 제대로 잡아야지. 그런 눈빛이었어요.”(유태평양)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향단과 방자 못지 않다.

입단과 함께 국립창극단 전원이 프랑스 공연을 간 한 달 동안 단둘이 한국에 남겨지며 ‘단짝’이 됐다. 조유아는 ‘정 많고 밥 잘 챙겨주는 누나’였다. 완창 판소리를 준비하는 유태평양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오므라이스까지 해줬다. 유태평양은 그런 누나를 잘 따르는 동생이다. ‘시간의 길이’가 쌓은 돈독함은 무대 위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이젠 대사 없이 눈만 봐도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조유아)

두 사람의 공통점도 있다. 무대 위에선 애드리브의 달인이다. 무턱대고 던져 극을 망치는 애드리브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극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점이에요. 아무 때나 무조건 튀려고 하면 모두가 망하죠. 적절한 ‘낄끼빠빠’(낄 땐 끼고 빠질 땐 빠진다), 완급 조절이 중요해요.”(유태평양) 빠른 상황 판단으로 적재적소에 들어가니, 하모니가 산다.

초연 당시 ‘춘향’ 무대에서 선보인 두 사람의 다양한 애드리브는 이번 대본에 정식으로 들어가게 됐다. ‘사랑가’를 인용한 ‘방자 방자 내 방자야’라는 구절은 “작사 작곡 안무까지 조유아”(유태평양)다. 오매불망 춘향을 만나러 갈 때를 기다리는 몽룡을 귀찮아하는 방자의 모습도 유태평양의 애드리브에서 나왔다. 기존의 이야기에 잎을 달고, 꽃을 피워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감초 배우들의 역할이다. “어떤 상황에 이입해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애드리브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조연들의 숙제이기도 하고요.”(유태평양) “그런 순간이 되면 못 참고 받아치고 싶어져요. (웃음)” (조유아) “요즘엔 누나가 걸어가는 것만 봐도 웃겨요. 정말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요. 아마 판소리를 안 했으면 개그맨을 했을 거예요. 평상시에서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싶은 ‘드립’(애드리브를 부르는 신조어)이 많이 나와요.”(유태평양)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에서 유태평양, 조유아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에서 유태평양, 조유아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해마다 대여섯 작품씩 올리는 국립창극단의 공연은 오랜 팬들이 많다. 단원들의 인기는 아이돌 그룹 못잖다. 매공연 많은 팬들이 무대를 직접 찾고, SNS로 피드백을 남긴다. 팬들의 애정만큼 두 사람의 연기와 소리에 대한 고민과 열정은 해를 더할수록 깊어진다.

조유아는 “그동안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오래 했다”고 말했다.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늘 웃겨야 할 것 같고, 재밌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있어요. 혹 안 웃겨서 실망감을 안길까 걱정하기도 하고요. 한 번씩 캐릭터가 아닌 조유아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도 했고요.”

유태평양도 마찬가지다. 최근 막 내린 ‘리어’의 글로스터처럼 무거운 역을 맡다가도 방자와 같은 전혀 다른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연달아 비슷한 결의 역할을 맡을 땐 배우로서의 고민이 깊어진다. “분명 다른 캐릭터인데, 두 캐릭터가 겹쳐 보일까봐 걱정인 거죠. 관객들에겐 이미 했던 연기의 반복이거나 비슷한 캐릭터로 겹쳐 보일까 고민이 컸어요.”

극복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정도(正道)’를 갈 뿐이다. “다양한 시도로 새로움을 찾아가고”,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관객들이 만족하는 모습에서 자신감을 찾는”(유태평양, 조유아) 과정에서 “고민과 맞서는 힘들이 생긴다”(유태평양)고 확신한다. 고민한 시간 만큼의 성장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서로가 먼저 알아본다. 두 사람은 “예전엔 넘치는 열정과 풋풋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노련함과 여유, 어색함 없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국립창극단의 간판 배우로 성장한 지금, 저마다의 목표와 꿈을 꾼다. 유태평양은 “제 삶의 전환점은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것이었다”며 “그전까진 소리꾼, 솔리스트의 길을 꿈꿨다면 창극단에 들어와 팀워크를 배우고 창극 배우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점점 작품 욕심이 커져요. 좋은 작품을 만나 좋은 역할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어떤 운명적 작품을 만날 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까진 그게 가장 기대가 돼요.” 조유아는 창극은 물론 소리의 욕심도 커져가는 때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며 “완창 판소리도 준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이 한 마디 보탠다. “내가 오므라이스 만들어 줄게.”(유태평양)

두 사람을 향한 관객들의 바람도 있다. 조유아 유태평양이 연기하는 춘향과 몽룡을 보고싶다는 리뷰가 초연 이후 적잖다. “저희가 하면 ‘19금 춘향’이죠.” (유태평양) “첫눈에 반하지도 않을 걸요.(웃음)” (조유아)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