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방원 사태’ 막으려면…
“영리목적 동물대여 금지하지만…
방송 촬영 목적에선 예외 조항”
‘미필적 고의’ 중심 수사도 문제
“과실 책임 꼭 물어야 재발방지”
최근 KBS1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제작진이 ‘까미’라는 이름의 말 발목에 와이어(줄)를 묶은 뒤, 말이 달리자 그 줄을 잡아 넘어뜨려 낙마 촬영을 한 영상이 외부에 공개되면서 동물권 침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장 동물보호단체들은 KBS와 드라마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처벌 기준이 ‘고의성’에 집중돼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은 물론 촬영 현장에서도 동물을 보호하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나오고 있다.
25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서는 동물보호단체 중 동물권행동 카라가 해외 촬영 가이드라인을 참고해서 만든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를 2020년부터 배포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미디어는 동물을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지 말아야 하며, 살아있는 동물을 불필요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위해 고의적으로 생명에 위협을 가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내 촬영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법적 근거인 동물보호법 제8조에 따르면 동물 학대를 금지하고 있으며 나아가 영리를 목적으로 동물을 대여하는 행위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카라 관계자는 “이마저도 법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지 카라 정책실장은 “영리 목적의 동물 대여 행위가 동물 학대로 금지돼 있지만 촬영, 체험, 교육 등 목적에서는 예외여서 사육 관리 기준만 준수하면 된다”며 “사육 관리 기준에도 의무 사항은 없어 법적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25일) ‘태종 이방원’ 제작진과 미팅을 갖고 가이드라인 내용을 한 번 더 주지시켰다”고 덧붙였다.
카라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비영리기구인 미국인도주의협회(AHA· American Humane Association)가 있다고 한다. 이 기구는 1940년대부터 미디어 촬영장에 동원되는 동물의 안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협회가 나온 이후 미국 영화에선 엔딩 크레딧에 ‘어떤 동물도 다치지 않았음(No Animals Were Harmed)’ 인증을 부여하는 등 촬영 현장에서 사용되는 동물이 다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제작에 참여한 간현임 카라 교육아카이브팀장은 “물론 AHA에서 영화 촬영물에 부여하는 인증 역시 법적 제도로 볼 수 없다”면서도 “이 정도로 해외에선 촬영 현장에서 동물 학대를 감시하는 기능이 있지만 국내에선 미비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물 학대 사건이 발생해도 처벌 기준이 ‘고의성’에 중점을 두고 있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동자연)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가해자가 미필적 고의가 있느냐가 사건에서 쟁점이 되기에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한 채 끝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동물학대 사건의 경우 과실범도 애초에 처벌을 하지 않고 고의범만 처벌하기에 실질적으론 처벌되는 사례가 매우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은 촬영 현장에서 또 다른 동물학대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동물 대여업에 대한 게 동물보호법상 규율이 제정돼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지금까지 미필적 고의를 두고 수사하던 관행을 과실 등에도 책임을 묻도록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채일택 동자연 정책팀장은 “방송국 내에서도 동물 보호 관련 지침이 없고 법적인 규율도 없는 상황”이라며 “동물보호법상 동물을 인위로 대여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광고 촬영은 대여 가능하기에 촬영을 할 때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항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 변호사는 “사람은 다치면 과실범을 처벌하듯, 동물학대 역시 과실범이나 중과실범에 대해서도 처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KBS는 지난 24일 ‘태종 이방원 사태’와 관련해 ‘생명 존중의 기본을 지키는 KBS로 거듭나겠습니다’는 제목의 사과문을 올렸다.
KBS는 사과문을 통해 “드라마 촬영에 투입된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시청자 여러분과 국민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시청자 여러분과 관련 단체의 고언과 질책을 엄중하게 받아들여,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작 관련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어 “콘텐츠 제작에 있어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작 현장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에 최선을 다하고, 이를 통해 신뢰받는 공영미디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