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며 가까스로 조종석 문 연 기장

배관공은 조종간 잡고 치과의사는 응급처치

비번 조종사들 달려들어 기체 안정시켜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여 174명 살려” 평가

UAE 항공사 플라이두바이(Flydubai) 소속 보잉 737-8 MAX(기체 번호 A6-FKF)의 모습. [로이터]
UAE 항공사 플라이두바이(Flydubai) 소속 보잉 737-8 MAX(기체 번호 A6-FKF)의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피투성이가 된 기장은 마지막 힘을 짜내 조종석 문을 열었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승객과 승무원들은 곧바로 안으로 뛰어들어 기장을 공격한 부기장을 제압했다. 30초도 안 돼 4300m 가까이 곤두박질치던 여객기는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두바이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던 플라이두바이 여객기에서 발생한 고의 추락 시도 사건에서 기장의 필사적인 대응과 배관공·치과의사·비번 조종사 등 탑승객들의 신속한 대처가 참사를 막은 결정적 요인으로 조명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적극적으로 대처한 승객들은 인도 출신 기장 스미트 마차르와 함께 용의자인 오만 국적 부기장을 제압해 당시 탑승했던 174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승객들을 살린 것은 기장 한 명만이 아니었다”며 “조종간을 잡은 배관공, 응급처치에 나선 치과의사, 비번 조종사와 승무원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인 이들이 함께 174명의 목숨을 지켜냈다”고 보도했다.

30일 이스라엘 외무부가 공개한 플라이두바이 FZ 1073편의 기장인 인도인 조종사 스미트 마차르의 모습. [AFP]
30일 이스라엘 외무부가 공개한 플라이두바이 FZ 1073편의 기장인 인도인 조종사 스미트 마차르의 모습. [AFP]

마차르는 부기장에게 흉기로 공격당한 뒤 조종석 바닥에 쓰러졌다. 피를 흘릴 정도로 심각한 부상에 처해있던 마차르는 고통을 이겨내면서 가까스로 조종석 출입문 해제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석 안으로 진입해 용의자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용의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여객기는 30초도 안 돼 약 1만4000피트(약 4300m)를 급강하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극도의 위험과 심각한 부상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려는 엄청난 용기와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수백명의 생명을 구하고 대형 참사를 막았다”며 마차르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고도 저항하며 조종석 문을 열었다”며 “승객과 승무원들이 공격자를 제압할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결국 승객 174명의 운명을 가른 첫 단추는 피투성이가 된 마치하르가 조종석 문을 연 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플라이두바이 FZ 1073편의 기장인 인도인 조종사 스밋 마차르가 구조된 뒤 구급대원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플라이두바이 FZ 1073편의 기장인 인도인 조종사 스밋 마차르가 구조된 뒤 구급대원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부기장 묶고, 기장 응급처치…비번 조종사들 도움도 참사 막는데 결정적

지난 3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비상 착륙했던 플라이두바이 항공기에 탑승했던 이스라엘 승객 야니브 하윤이 셔츠에 핏자국이 묻은 채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환영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AP]
지난 3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비상 착륙했던 플라이두바이 항공기에 탑승했던 이스라엘 승객 야니브 하윤이 셔츠에 핏자국이 묻은 채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환영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AP]

자칫 ‘제2의 9·11 테러’가 될 뻔한 이 사건에서 마차르만 영웅은 아니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조종석으로 뛰어든 승객 가운데 이스라엘 국적의 배관공 야니브 하윤이 있었다. 그는 부기장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급강하 중이던 여객기의 조종간을 직접 잡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하윤은 가디언에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뒤로 뛰어가 조종간을 잡고 손잡이를 뒤로 당겼다”며 “TV 프로그램에서 본 대로 했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승무원과 조종사들이 조종을 넘겨받았다고 한다.

이스라엘 국적의 치과의사 쇼타 무사예프. 그는 지난 30일 플라이두바이 소속 항공기에서 벌어진 고의 추락 시도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부기장을 제압하는데 일조한 데 이어 중상을 입은 기장을 응급처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SNS]
이스라엘 국적의 치과의사 쇼타 무사예프. 그는 지난 30일 플라이두바이 소속 항공기에서 벌어진 고의 추락 시도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부기장을 제압하는데 일조한 데 이어 중상을 입은 기장을 응급처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SNS]

이스라엘 국적의 치과의사 쇼타 무사예프도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부기장은 쓰러진 마차르 위에 올라탄 채 흉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무사예프는 부기장을 제압하는 데 힘을 보탠 뒤 피를 많이 흘린 마차르를 응급처치했다. 이 밖에도 다른 승객들과 함께 헤드폰 선과 플라스틱 케이블 타이로 부기장의 몸을 묶는 데도 힘을 보탰다.

무사예프는 “머리와 손 등 온몸에 베인 상처가 있었고 손은 거의 두 동강 날 정도로 심하게 다쳐 있었다. 출혈도 많아 상태가 매우 위중했다”며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를 잃었을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여객기에는 또 다른 ‘구원자’가 있었다. 비번으로 탑승하고 있던 조종사들이다.

한 승객은 영국 BBC 방송에 “유럽 출신 교대 조종사 2명이 타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인 영국인 조종사가 조종석에 들어갔다”며 “기수를 들어 올리고 조종간을 잡아 항공기를 안정시킨 뒤 사우디아라비아에 착륙시켰다”고 말했다.

항공 전문가들은 여객기가 급강하 과정에서 꼬리 부분 방향타 대부분이 파손됐는데도 추락하지 않은 데 놀라움을 나타냈다. 유나이티드항공 조종사 출신 항공안전 전문가 스티브 아로요는 “방향타가 그렇게 파손될 정도라면 엄청난 공기역학적 힘이 가해졌다는 의미”라며 “항공기가 공중에서 분해되지 않은 것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 전문가 제프 구제티는 “기체를 회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고도가 남아 있었던 것이 이들을 살렸다”며 “1만피트 아래까지 떨어졌다면 수평 비행 상태로 되돌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여객기 추락 시도한 부기장, UAE로 압송…테러 연계 혐의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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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91298

yckim645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