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이사람-박은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
“가장 나쁜 조정이 가장 좋은 판결보다 낫습니다. 이번에 원장직에 공모하면서도 그 점을 강조했어요.”
박은수 신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의료중재원)은 “조정은 빨리 매듭을 지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하지만, 소송으로 가 원인을 밝히고 손해액을 산정하다 보면 몇 년씩 걸릴 수 있다”며 ‘조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나라에서 3심 제도를 운용하는 만큼 판결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며 “나중에 아무리 제대로 된 판결을 받는다더라도, 때를 놓칠 수 있다는 한계가 남는다”고 덧붙였다.
조정이란, 민사상의 분쟁을 재판을 통한 판결로 해결하지 않고, 양 당사자가 양보와 합의로 해결하는 절차다. 의료중재원은 의료사고 원인 규명과 과실 유무 판단을 위한 감정, 설득과 분쟁 해결을 위한 조정절차를 함께 진행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지난 3일 취임식을 시작으로 제4대 의료중재원장 업무에 돌입한 박 원장은 취임사에서 ‘타협의 기술’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타협의 기술은 ‘경청’이다. 박 원장은 “앞에서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 답이 턱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중재원과 인연은 그의 국회의원 활동 시절 시작됐다. 1983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변호사, 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2008년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의원 시절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복지위에서 그는 현행 의료분쟁조정 법률안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의료중재원 설립에 기여했다. “설립 이후에도 관심이 있으니 중재원을 계속 지켜보게 됐다”는 그는 ‘인생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란 생각으로 의료중재원장에 도전했다.
박 원장은 중재원의 핵심으로 ‘전문성’과 ‘신뢰’를 꼽았다. 그는 “의료분쟁이란 건, 조정을 한다는 건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않으면 조정이 될 수 없다”며 “‘소송을 하면 법원에서 판결이 이렇게 날 것이다’라고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전문성이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 설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분쟁의 특성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정의했다. 의료 정보는 사실상 병원이 다 가지고 있고, 환자들은 차트나 진료기록을 봐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예전엔 의료분쟁이 거의 타협이 안 되는 분야라고 할 정도로 대립이 심했다”며 “처음 업무보고를 받아보니 중재원이 1년에 2000건을 조정한 셈이더라. 중재원 1년 예산이 200억인데, 200억을 들여 2000건을 조정했다고 하면 대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원장은 늘 ‘싸움판’에 있었다. 법률가가 되기 전부터 국회의원 시절까지 그의 눈앞엔 늘 크고 작은 다툼들이 있었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에 걸린 그는 오늘날까지 휠체어를 사용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마주한 그에게 부모님과 선생님이 알려준 ‘사법시험’이란 제도는 놀림과 차별을 넘을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해줬다. 이후 그는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1980년 2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해 그를 포함한 장애인 4명은 임관이 거부됐다. 박 원장은 “나 하나야 괜찮아도 장애인은 판사가 될 수 없다는 선례가 남는 건 안 된다 생각해 싸워서 바로 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부당한 처사를 언론에 알렸고, 여론이 들끓으며 법조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국내에서 의료 분쟁을 가장 많이 마주하고 있다.
3년의 임기를 시작한 박 원장은 올해 개원 10주년을 맞는 중재원의 ‘10년사 백서’를 준비 중이다. 그는 “노사관계에서도 조정단계가 있다. 거기서 성공하면 과격하게 안 가도 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분야마다 우리가 화해하고, 타협하고, 조정하는 문화는 굉장히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백서를 잘 준비해서 우선은 국내에 어떻게 조정문화를 만들 수 있는지 우리 기관의 경험을 공유하려 한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직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원장이 되면 제일 좋겠다”며 “또한, ‘가장 나쁜 조정이 가장 좋은 판결보다 낫다’는 걸 국민께서 느끼고 믿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상현·유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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