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자 33.5%, 남녀 갈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아
“격화된 경쟁, 남녀 갈등 배경…미디어·정치권이 부추겨”
“하류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빈부 갈등 원인”
[헤럴드경제=채상우·김빛나·김희량 기자] 나이가 어릴수록 ‘이념 갈등’보다는 ‘남녀 갈등’을 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빈부 갈등’ 역시 젊은 세대에게는 큰 사회 문제 중 하나였다.
헤럴드경제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7~29일 만 18~39세 청년 1018명에게 ‘우리 사회 갈등 인식’을 조사한 결과, 남녀 갈등이라는 응답이 33.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빈부 갈등이 32.5%였다. 이념 갈등은 12.8%에 불과했다.
설문 결과가 보여주듯, 20~30대 청년들은 성별로 나뉘어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위로 올라서기 힘든 현실에 좌절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점점 격화되는 경쟁 사회가 이런 갈등을 촉발시킨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더 싸워라”…남녀 갈등 부추기는 사회
남녀의 갈등은 이제 ‘혐오’의 단계까지 올라온 듯 하다. 온라인에서는 일부 남성과 여성아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로 치부하기도 하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여성인권’ 또는 ‘남성의 역차별’ 등 성평등과 관련한 건설적 논의는 뒤편으로 밀린지 오래다. 이제는 혐오에 대한 혐오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를 싸움을 이어오는 모양새다.
남녀 갈등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만18~24세 45.2%가 우리 사회 가장 큰 갈은 문제로 남녀 갈등을 꼽았으며, 만25~29세도 40.3%에 달했다. 만30~34세는 30%, 만35~39세는 16.2%로 급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녀 갈등은 보수 성향이 짙을 수록 더욱 심각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이념 성향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36.1%가 남녀 갈등을 심각하게 느낀다고 답했으며, 진보 성향은 31.5%로 소폭 낮았다. 지역적으로도 보수 성향이 뚜렷한 대구·경북 지역 거주자의 경우 40.8%가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진보 성향이 짙은 광주·전라는 32.8%로 낮았다.
청년들과 전문가는 날이 갈수록 격화되는 경쟁사회가 남녀 갈등의 원인이며, 미디어와 정치권이 이런 남녀 갈등을 이용해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최시훈(20·남) 씨는 “남녀 갈등은 경쟁사회의 산물”이라며 “자기가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개인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수록 남녀 갈등이 격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옥혜신(24·여) 씨는 “언론에서 남녀간의 역할이나 특정집단에서의 할당된 업무 수준 등에 대한 이슈를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청년들의 경우 미디어에서 지속적으로 이런 소식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남녀 갈등에 관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군가산점과 같은 젊은 세대들에게 예민한 문제를 정치권이 도구화해 자신들의 세력결집에 이용했다”며 “이런 혐오를 부추기는 행태가 남녀 갈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나는 성장할 수 없다” 박탈감이 일으킨 빈부 갈등
현실에서 한국의 빈부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빈부격차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12년 0.38에서 2020년 0.33으로 떨어졌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들은 빈부 갈등이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빈부 갈등은 태어날 때부터 갈린 ‘흙수저’와 ‘금수저’의 괴리에서 느끼는 상태적 박탈감을 의미한다. 금수저로 불리는 기득권층 자녀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높은 자리를 쉽게 차지하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낀 것이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심각하게 빈부 갈등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40.6%가 빈부 갈등이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갈등 문제라고 꼽은 반면, 남성은 25.2%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20대에 비해 더 빈부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만30~34세는 39%가 빈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만35~39세도 37.6%에 달했다. 반면, 만18~24세는 26.1%, 만25~29세는 28.9%였다.
또 실제 학력이 낮고 소득이 적은 계층은 오히려 빈부 갈등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다. 대학교 재학생 이상 32.2%가 빈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나, 중졸 이하는 22.6%에 불과했다. 가구소득으로 보면 월 소득 600만원~800만원 미만은 32.7%가 빈부 갈등이 심각하다 했지만, 200만원 미만은 24.4%였다.
직장인 김영민(31·남) 씨는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이제는 없다고 본다”며 “뒷배경이 있는 친구들은 실패를 해도 다시 성공할 밑거름이 되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실패조차 용납되지 않는 사회”라고 푸념했다.
대학원생 채모(33·남) 씨는 “대학원 동기들 사이에서도 경제 형편에 따라 사회와 삶을 대하는 인식 자체가 다른 것을 경험하고 있다”며 “주거문제만 하더라도 고시원을 전전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보증금 수천만원에 월세 수백만원을 쓰며 사는 친구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성장 사다리가 끊긴 상황에서 청년층이 언제라도 하류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90년대에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했지만, 현재는 객관적으로 중산층임에도 하류층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으로, 추락한다는 공포감이 빈부 갈등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하류층으로 빠질 수 있다고 느끼는 불안감이 가장 큰 문제”라며 “부동산 문제, 취업문제 등 여러 상황이 청년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청년들이 사회복지를 받지 못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며 “경제 성장의 혜택을 청년들에게 나눠주면, 그런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123@heraldcorp.com
binna@heraldcorp.com
hop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