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ㆍ미술ㆍ음악 아우른 문화공간

죽음 바라본 대비된 두 공간 인상적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상공원의 벤치에 자리한 티머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상공원의 벤치에 자리한 티머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공간부터 동선까지 일관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음과 생명, 빛과 어둠의 이야기다. 이곳을 설계한 윤승현 중앙대 교수(건축사무소 인터커드 대표)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기존의 박물관, 전시공간과 달리 일률적인 동선을 가지고 있다”며 “적지 않은 크기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지 않으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상설전시실과 하늘광장·콘솔레이션(consolation)홀·도서관·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된다. 박물관 전체는 “완결된 하나의 동선을 가진 거대한 전시공간”이자 “건축과 미술, 음악이 함께 공유되는 문화공간”이다. 모든 공간 하나하나가 영역의 구분 없이 독립된 전시공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지상공원의 벤치에 자리한 티머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는 과거 노숙자들의 발길이 이어진 공간으로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원의 정체성을 설명”하되, 위트있는 예술작품으로 존재한다. 이규상 보이드아키텍트 대표는 “공원의 노숙자 예수부터 진입광장의 조각품, 전시공간으로서의 로비, 콘솔레이션의 영상 전시 등에 이르기까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격자모듈의 전시장이 수없이 이어지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전망대 공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전망대 공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특히 동선은 설계 과정에서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 램프를 따라 이동하는 길은 ‘순례길’을 걷는 듯한 기분을 준다. 공원에서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입구인 ‘빛의 광장’은 이곳이 죽음이 아닌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박물관의 로비이자 전시적 성격을 가진 홀을 지나 채플 공간(성인 정하상을 기념하는 경당)을 만난 뒤, 콘솔레이션홀에 들어선다. 공간의 무게가 주는 경건함이 채워지는 곳이다. 콘솔레이션홀에서 빠져나오면 드넓은 하늘광장을 마주한다. 윤 교수는 “램프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콘솔레이션홀과 하늘광장을 만나는데, 이 의외적 공간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하늘광장을 지나 하늘길까지 이어지는 램프길만 치면 300m이나, 전체 이동거리로 보면 1㎞가 된다.

공간마다 의미가 담기지 않은 곳은 없다. 그 중에서도 콘솔레이션홀과 하늘광장은 박물관의 시선과 의미를 가장 잘 담은 공간이다.

땅속 14m아래로 자리한 콘솔레이션홀은 ‘위안의 공간’이다. 조명을 완전히 낮춰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은 오랜 시간동안 죽임을 당한 이들을 기린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땅속 14m아래로 자리한 콘솔레이션홀은 ‘위안의 공간’이다. 조명을 완전히 낮춰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은 오랜 시간동안 죽임을 당한 이들을 기린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땅속 14m 아래로 자리한 콘솔레이션홀은 ‘위안의 공간’이다. 조명을 완전히 낮춰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은 오랜 시간동안 죽임을 당한 이들을 기린다. 기념 전당의 제단에는 박해 시기 서소문 네거리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됐다. 그 위로는 지상에서 한 줄기 빛이 쏟아진다. 콘솔레이션홀은 1.5m의 두꺼운 벽으로 박물관의 다른 공간과 분리하면서도 사방이 2m 높이로 열려있다. 윤 교수는 “죽음을 기리는 장소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문턱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죽어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4면의 멀티 프로젝트를 통해 영상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를 하지 않을 때는 음악회가 열리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이곳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도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윤승현 교수)으로의 박물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하늘광장은 처형장에서 시작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터에서 떠나간 영혼들이 안식을 누리고 있는 하늘을 의미한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하늘광장은 처형장에서 시작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터에서 떠나간 영혼들이 안식을 누리고 있는 하늘을 의미한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파란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하늘광장은 콘솔레이션홀과 마주하며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지상이 처형지, 콘솔레이션홀이 무덤이라면 하늘광장은 떠나간 영혼이 안식을 누리고 있는 하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가로·세로 각 33m, 높이 18m의 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하늘광장은 “죽음이 끝이 아닌 영원한 안식”이자 “죽음에서 승화하는 공간”(이규상 대표)으로 위압감을 더한다. 윤 교수는 “콘솔레이션홀과 하늘광장은 가장 극단적 관계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두 개의 공간이 서로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치환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