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완성한 제주4.3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한강 작가. 문학동네 제공
7년 만에 완성한 제주4.3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한강 작가. 문학동네 제공

“‘소년이 온다’를 씀으로써 악몽들, 죽음의 깊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을 건너면서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주는 소설이었어요, 지극한 사랑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소설이 나를 구해줬지’ 그런 마음이 더 듭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고 2018년 ‘흰’으로 같은 상 최종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가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로 돌아왔다.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루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한강 작가는 7일 오전 유튜브를 통한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에 과한 소설”이라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됐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소설은 한강 작가가 2014년 6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난 뒤 꾼 꿈이 모티프가 됐다. 눈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서 있고 뒤에 무덤들이 있는데, ‘이런 데 오랫동안 무덤이 방치돼 있었구나’, 생각하는 사이 밀물이 차오르면서, 무덤들이 모두 비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하는데, 어쩔줄 몰라하다 깬 꿈에서 시작한다.

꿈을 기록했지만 오랫동안 소설을 짓진 못했다. 그 사이 소설 ‘흰’을 쓰고, ‘눈’3부작 중 두 부분을 썼다. 그러던 중 90년대 제주에 3개월 정도 내려가 살 던 때, 그 집 할머니와 함께 동네를 걷다 제주 4.3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 꿈이 제주 4.3으로 연결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 제가 막 의도를 가지고 쓰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 모티프가 떠오르고, 어떤 장면이 떠올라서 어떤 소설이 될지 스스로도 알고 싶어지고, 시간이 흘러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이런 방향으로 가는 거였구나 하는 이상한 각성의 순간이 있는 소설이 있어요, 절대로 제주 민간인 학살에 대해 쓸 계획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되었어요.”

소설 ‘흰’을 발표하고, 전시를 위한 영상작업 ‘작별하지 않는다’를 했을 때도 책을 쓰게 되리란걸 몰랐다고 한다. 꿈 영상작업은 한라산에서 두 여자가 흰 천을 들고 바다로 나아가는 18분짜리로, 이 때 작업한 스틸 컷이 소설책의 표지로 쓰였다.

이 작업이 제주 할머니와 골목을 걸었던 경험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작가는 “소설이 요구하는 마음의 상태가 있는데, 그 상태에서 벗어날 때도 많지만 최대한 근접하려고 한다”며, “이 소설이 요구한 건 지극한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게 두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동시에 사는 것이라고. 내가 여기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동시에 가 있는 초자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 인물들의 마음이 그런 간절한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했고, 그런 상태에 닿기 위해 애쓴 소설입니다.”

소설은 작가 경하와 친구인 다큐멘터리 감독 인성, 제주 4.3 당시 부모와 동생을 잃고, 오빠의 행방을 모르게 된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주인공이다.

한강은 “현재를 살아가는 경하라는 인물과 인선이 맺어진 실과 인선이 어머니와 이어져 있는 실, 인선의 어머니와 죽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는 실이 전류가 통하는 걸 상상했다”고 밝혔다.

이야기 도입부에는 어머니를 모시며 목공일을 하는 인선의 손가락 절단 사고가 들어있다.

“잘린 신경이 떨어져 나가면 안되기 때문에 상처를 주어서 피가 흐르게 하고 생명이 흐르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 잘려나간 부분이 썩는 거죠. 고통스럽지만 환부에 바늘을 찔러넣게 해야 살아있게 되죠. 결국은 우리가 껴안기 어려운 걸 껴안을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하는 인선의 병문안을 갔다가 인선의 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눈보라 치는 중산간 인선의 집을 찾아간다. 한강은 “새는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모든 걸 무릅쓰고 구하고 싶은 어떤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하에서 글을 쓰면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립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는 작가는 “간절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 개인적 삶에 갇히지 않고 결국은 그 밖으로 뻗어나가서 닿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 소설을 쓰는데 영향을 준 것 같다”고도 했다.

한강 작가는 앞으로 서너 편 정도 쓸 소설이 밀려있다며, “쓰려고 하는 소설은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른 방향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예약판매만으로 초판 완판됐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